가령 국사공부를 한다고 하자. 을사조약이후 한말 의병항쟁에서 전사자 1만7천명, 부상자 3만6천명이라는 기술이 나온다. 이 한줄 기사를 놓고도 공부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a) 시험에 이건 나오지 않을 거야. ‘전사자 숫자, 부상자 숫자까지 외울 필요 없나? 이거 외우는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게 실속이 있어’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b) 그렇지 않고, 시험에 나올지 모르니까 전사자 1만7천명, 부상자 3만6천명을 야무지게 외우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 앞의 두 경우는, 사람이 몇 명이 죽었든, 1만명이 죽었든 3만명이 죽었든 그 사실에는 인간적 감수성이 전혀 발동하지 않은 경우다. 그냥 숫자일 뿐이다, 시험 정답용으로 숫자를 외우면 그만이다,

c) 앞의 두 경우와 달리,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일본군이 왜 남의 나라에 들어와서 그렇게 많은 조선사람을 죽였을까? 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분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자료를 찾아볼 것이다,

d) 문제의식이 더 발전하면, 제국주의 침략사 일반에서의 야만적 학살로 시야를 넓힐 것이다, 이른바 근대문명을 앞세운 약육강식의 야만의 역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것이다, 인간이란게 무언가, 역사란 무언가로 사유가 더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간단히 본 바이지만, 간단한 사실을 놓고도 머리를 쓰는 게 다르다, 그러니까 같은 공부를 해도 가는 길이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그러니까 머리라는 것, CPU의 차이가 아니다. CPU를 작동시키는 회로가 문제다, 인간적 감수성이 죽어있다면 - 1만7천명의 전사자에서 분노를 느끼고 느끼지 못하고는 대단한 지식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지능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 CPU는 고철 덩어리 이상의 것이 아니다,

다시 교사의 경우를 보자,

a) 그냥 수업시간을 땜질하는 교사라면, 전사자 1만7천명을 그냥 불러줄 것이다,

b) 그래도 좀 더 부지런한 교사라면 관련 참고서를 보고 전투상황에 대해서 보완할 것이다,

c) 일제의 야만적 침략성을 일깨우기 위해서 학생들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수업방식을 고민할 것이다,

d) 단순한 국사수업이 아니라 역사적 판단, 이성적 판단을 일깨우는 수업을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사도 있고,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사도 있고, 올바른 국사교양을 전달하기 위한 교사도 있고, 학생들의 인생을 마주하는 교사도 있다, 그에 따라 수업준비나 연구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까 집중력이란 거, 삶의 집중력이란 것은, 어디에 초점을 두고 무엇을 마주하느냐에서 달라진다, 그에 따라 공부하는게 달라지고 사는게 달라진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과목을 가르친다고 같은 게 아니다, 우리가 인간의 의식을 말하지만 천차만별이다, 거기에서 머리를 쓰는게 달라진다,

다시 말하자면, 머리는 CPU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시쳇말로 ‘족집게 공부’라는 것은, 회로을 열어주는 게 아니라 회로를 녹쓸게 하는 거다, 족집게 답안 그것으로 만족하니까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결국 개념이 없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개념이란 게 생길 수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