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제인의 영원한 미소’
필자는 거의 매년 학생들과 답사를 같이 가게 된다. 그래서 서산의 유명한 '삼존마애불상'도 여러 번 갔다. 그곳에 갈 때마다 해설을 맡은 학생들은 '백제인의 영원한 미소'라는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나는 쓴 웃음을 짓고 돌아선다. 매번 갈 때 마다 의례 똑 같은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의 눈에 '백제인의 미소'가 보여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권위 있는 학자가 그런 소리를 하니까, 또 그 소리가 그럴싸 해보여서 너도 나도 덩달아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다. '백제인의 영원한 미소'를 담은 불상, 참 멋진 표현이다. 그러나 자신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해설판의 앵무새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 쓸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자기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 현장답사를 하는데, 안목을 키우는 게 아니라 안목을 스스로 죽이는 것이다. ‘백제인의 영원한 미소’로서 자신의 상상력은 끝이다. 달리 보고 말고 할 것이 없다. 하다못해, ‘내 눈에는 그렇게 안보인다’고 말하는 학생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정도의 솔직한 학생도 본 기억이 없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도 아무도 벌거벗었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우중(愚衆)들처럼 너도 나도 ‘백제인의 영원한 미소’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다. 다른 문화유산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해설에 따라 본다. 자기 눈으로 보고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해설에 감동한다. 2, 우리네 일상도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웬만한 지식인 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시사해설, 경제해설에 따라 세상을 본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해설에 맞추어서 세상을 본다. 또 반짝하는 이론이 등장하면 그에 맞추어서 따라가기 급급하고 그 이론의 앵무새로서 자족한다. 그렇게 남의 해설을 따라 다니다 보면 어디까지나 남의 생각인지, 어디까지가 자기이야기인지도 모르게 된다. 남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자기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도 분별하지 못한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자기인생이 실종되어 가고 있다는 것, 삶의 주인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신앙생활도 그렇다. 목사님의 설교에 따라 성경을 이해하고 스님의 설법에 따라 불경을 이해한다면 예수님의 신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신도가 되고 부처님의 신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님의 신도가 되고만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기로 한다면 평생을 해도 예수님과 부처님과는 끝내 한번도 직거래를 할 수가 없다. 물론 해설이란 것도 필요하고 인생 가이드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 때의 참조사항이고 인생살이의 이정표일 뿐이다. 해설이 내 삶을 대신할 수 없고 가이드의 삶이 나의 삶은 아니다. 어쩌면 해설판 인생을 떠날 때, 그 때 우리는 ‘삶’이란 개념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을 지 모른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