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자본주의(4):IMF 사태 이후 한.중.일

ㆍ작성자	달그림자
ㆍ작성일	2010-08-08

유교자본주의(4):IMF 사태 이후 한·중·일

IMF 사태를 계기로 유교적 가치 내지 아시아적 가치가 서방에 의해 난폭하게 공격당하고, 10년 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로 전세계적 규모의 지각변동이 발생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한국이나 동북아시아 3국과 전세계에 걸쳐 정치경제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심대한 변화가 진행되어 왔다.

IMF 사태를 전후해서 한국사회 내부에서 '유교'를 둘러싼 상이한 흐름이 형성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소설가 최인호가 기업인들로부터 우리나라에는 본받을 만한 역사적 상인이 없다는 탄식을 듣고 신문에 조선시대 상인 임상옥을 모델로 한 소설 [상도](商道)를 연재하기 시작한 후 IMF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이나 투기자본의 음모론과 별개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심각한 김영삼 정부하에서 발생한 IMF 사태를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앞에 놓고 의를 먼저 생각’(見利思義)하라, 상인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유교의 정도론(正道)론, '경제의 새로운 철학'을 제시했다. 이 소설은 단행본으로 나오고,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 소설가가 병든 한국자본주의의 치유를 위해 ‘당위로서의 유교적 시장경제'를 제시한 것에 우리 사회가 크게 공감한 것이다.

다른 한편 이 무렵, 국내의 한 학자는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내서 파란을 일으켰다. 이런 주장은 그 주장의 타당성을 따지기 전에 20세기 말의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공자'가 살아있다는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현실로서의 유교자본주의' 사회를 일깨우며, 유교문화가 적어서가 아니라 낡고 위선적인 유교문화 때문에 한국사회가 위기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새삼스럽게 곧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반론에 직면했지만, 한국사회에서 유교의 폐기-부활, 유교적 전통과 서구적 근대라는 이분법을 넘어 어떤 유교, 어떤 공자냐(어떤 기독교냐)하는 과제를 던졌다. 한국은 교육부터 매우 철저하게 미국화-서구화되어 있고, 일본이나 중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서구 국가 중 기독교 인구 비율이 드물게 높은 나라라는 점에서 더욱 더 그러하다. 경제발전 단계나 정치권력의 대내외적 성격과 다른 (생활/경제)문화적 차원에서 '한국사회의 성격'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실제 정치경제 현실에서 임기 말의 개신교 장로인 김영삼 대통령과 가톨릭 신자인 신임 김대중 대통령 정부에 걸친 미국 중심의 'IMF 신탁통치'하에서 일시적으로 정책주권을 상실당하였다. 외환 구제금융의 댓가로 고금리를 지불하는 것은 물론, 한국실정에 맞지 않는 약탈적 경제정책을 강요하여 민생을 어렵게 하고, 해외자본의 이익을 실현했다. '아시아적 관치경제' 해체와 서구적 자유시장경제 체제 이행 과정에서 '카지노 자본주의'라 불리는 인터넷 기반의 금융주도 자본주의 질서가 전면적으로 수용되었다. 전면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 중산층 붕괴, 비정규직 급증 등으로 ‘유교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다고 평가되는 한국의 재벌 대기업에서도 직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약화되고, 전통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가족사회의 해체도 크게 늘어났다. '생존'이라는 지상과제 앞에서 물질주의-개인주의-단기적 한탕주의 등의 가치관이 강화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정리해고 등 다양한 구조조정으로 거품을 걷어낸 한국의 재벌 대기업 상당수는 전세계적으로 확대되고 격화된 경쟁체제에서 빠르게 세계적 기업으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발전한 산업영역은 가전제품에서부터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에 걸쳐 있는데, 중국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한 덕을 보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최대 수출국은 2003년에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고 미국 의존도 약화와 중국 의존도 강화는 계속되었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질서를 상징하는 세계무역기구(WTO)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중국은 1995년 창립된 WTO에 2001년 가입하여 국내 법제도를 글로벌 스낸다드에 맞게 개혁하였다. 그리고 세계경제에 전면적으로 편입되어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듭하였다. 연간 10%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의 세계경제의 지위는 1999년 7위(미, 일, 독, 영, 불, 이, 중)에서 2007년에는 이탈리아, 영국에 이어 독일까지 제치고 세계 3위의 대국으로 올라섰다.

공산당 지도하 중국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지도적 이념으로서 맑스주의는 퇴색되었으나 포기하지 않았고,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도이념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시장경제의 고도성장과 더불어 심화되는 계층간, 지역간 빈부격차와 갈등에 대응하여 중국 지도부는 공자의 유교을 보다 전면에 내세우는 선택을 했다.

2003년 중국 공산당은 유교 경전을 인용하기 시작하는 데서 나아가 자신의 현상황과 미래에 대해서도 중국 고전 [시경](詩經) 전통적 유교 언어로 표현했다. 즉 후진국-중진국-선진국과 같은 서구적 언어가 아니라, 소강사회(小康社會)라는 말로 자신의 현실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이상적인 미래를 '대동사회'(大同社會)라 표현하였다. 2005년에는 처음으로 국가 차원에서 공자에 대한 제사, 석전제를 치루기 시작했고, 최고 대학인 인민대학에 공자 동상을 세웠다. 나아가 전세계에 '공자문화원'(아카데미)을 개설하여 중국의 전통 교육·문화 수출을 시작했다.

‘유교자본주의’의 본산이라 할만한 일본은 부동산 거품 붕괴 등으로 ‘잃어버린 10년’(1991-2002)을 거치고 다소 회복하는 양상을 보여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지위를 유지해갔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하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맟춘 민영화, 규제완화 등의 개혁으로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증가, 정신적 황폐화 등은 심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일본의 기업 중 대표적으로 미국화-서구화를 통해 개혁을 추구하는 것으로 평가된 소니(SONY)는 경쟁력이 약화되는 반면, 나름대로 일본식 종신고용 문화를 고수해 온 대표적인 기업 도요타(TOYOTA)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이며 ‘도요타이즘’이라는 경영철학으로 전세계의 명성을 얻었다.

다른 한편, 2006년에 일본의 한 수학자가 쓴 [국가의 품격]이라는 책은 대다수 지식인이 아닌 국민 대중들의 서구화에 대한 반감과 복고주의 지향을 잘 보여 주었다. 기독교와 서구 합리주의에 기초한 자유, 평등, 민주주의의 논리는 일본 고유의 정서를 상실하게 하고 일본인의 자부심과 도덕의 추락을 자초했다며, 일본인과 일본 국가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본 전통 정신-사무라이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 저서는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경제, 군사, 과학기술 등의 영역에서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누려 오던 미국은 21세기 벽두에 스스로 ‘미국적 가치’의 편협성과 허구성을 드러냈다. 2001년 9·11테러를 겪은 후, 2003년에는 영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의 반대조차 무시하고 ‘테러 배후’인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심기 위한 ‘새로운 십자군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전쟁의 결정적 구실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없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국에서도 파병을 둘러싼 격렬한 사회정치적 갈등을 유발한 이 눈먼 전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 종교와 결합한 특수한 이념임을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경제대불황은 전쟁만이 아니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도 눈 먼 것임을 드러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