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이성, 뜨거운 감정(3-2)

ㆍ작성자	달그림자
ㆍ작성일	2012-08-22

냉철한 이성, 뜨거운 감정(3-2)

1. 음악하는 한 지인이 동네 솔밭공원에서 ‘생명평화’ 주제로 작은 연주회를 가졌다. 우울한 시절에 동네 남녀노소도, 빈부귀천도 가리지 않고 한 자리에 모여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사회자가 그 음악인더러 왜 이런 공연을 하느냐고 물었다. ‘자연이 고맙고, 자연에 미안해서’라고 답했다. 산천초목부터 아무런 댓가없이 인간이 누리는 자연이 고마운 것은 한이 없고, 바로 그 자연이 더럽혀지고 상처난 것을 보면 미안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자연에 대한 그런 감정표현이 새삼스럽다.

2. 사람들은 대개 어런 시절에는 자연 생명체에 대해 짓굳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나무와 짐승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면서 친구가 되어 어울린다. 어른이 될수록 자연과 대화한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 되고, 더러는 신통한 일로 여겨진다. 나이가 들면서 지식 주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연에 대해 고맙다거나, 두렵다거나 이런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지적 미성숙으로 여겨지고, 공적인 자리에서 지식인의 그런 표현은 금기시 되어 왔다.

3. ‘위대한 이성’을 발견한 근대의 인간에게 자연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이며, 자연은 인간에게 ‘차가운 이성’에 의한 관찰, 탐구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자연에 대한 이런 과학적 탐구의 성과는 자연에 대한 많은 미신으로부터, 종교적 미신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주었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의 성과가 상품화되고, 개량된 도구가 영리추구 생산수단이 되면서 생산력 발전과 동시에 인간의 삶의 방식 자체가 자연과 급격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 바다의 자연에 의존하고 자연의 질서를 따르던 사고방식과 생산방식은 점점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연에 대한 의존성이 줄어들었다. 밤낮도, 사계절도 없이 생산하고, 수송도구의 개량으로 생산의 공간적 자유도 확대되었다. 그 극적 표현이 산업혁명이었다. 이 즈음부터 ‘자연’은 ‘토지’와 ‘자원’으로 축소되고, 그 토지와 자원은 인간의 지배와 개발대상이 되고, 욕망충족 대상이 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중심주의, 인간우월주의 사고방식에서는 자연에 대한 오랜 인간의 다양한 자연스러운 감정은 거세되었다. 무생물이거나 초목이거나 동물이거나 인간이 아닌 모든 자연은 고맙거나 미안한 것이 아니며, 두려움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감성은 메마르고 죽어갔다. 모든 자연은 물질로 간주되면서 동식물 생명체로서의 자연이 인간처럼 감각과 감정이 있고, 고통을 겪는다는 관념 자체가 거세된 결과였다. 다시 말하면, 모든 자연은 감각도, 감정도, 생명도 없는 ‘물질’로 간주하는 것은 동식물을 무분별하게, 대량으로 살상하고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4. 산업혁명 직전에 나타난 근대 경제학의 시조 아담 스미쓰의 [도덕감정론]은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감정’에 대한 풍부한 논의가 있고, 인간의 양심과 타인의 고락에 대한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깊은 통찰력이 있다. 그러나 이미 확고해진 인간중심주의로 인해 자연에 대한 도덕감정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인간에 대한 도덕감정도 정작 ‘자본주의의 성경’이라는 [국부론]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후 과학혁명이 가속화되고,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경제학에서 인간은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연과 달리, 동식물과 질적으로 달리 이성을 가진 위대한 존재다. 그리고 근대의 새로운 인간으로서 이 이성적 인간, 합리적 인간은 기본적으로 지적이고 논리적, 계산적 존재이며,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존재이며, 더 나아가서 감정이 없는 존재다. 기업인들은 자연을 대하는 바로 그 냉철한 이성, 차가운 가슴으로 다른 자본가와 서로 경쟁하며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 이윤을 위하여 자연을 대량으로 인간의 욕구에 맞게 변화시키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를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냉철한 이성, 차가운 가슴으로 기계를 도입하고, 최소한의 임금을 주고 최대한의 노동을 시키며 자연착취와 함께 노동착취를 한 결과가 분노의 쓰나미를 동반한 러다이트 운동이며, 한국의 식민지 노동운동이며, 전후 산업혁명 과정에서 일어나 지금도 계속되는 ‘전태일 현상’이다.

5. 인터넷 혁명으로 경제의 탈산업화, 지식정보화가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경제’의 중심은 자본주의의 금융화였다. ‘사이버 공간’이라는 전혀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며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워진 인터넷 지식정보경제는 자연에서부터 더욱 더 멀어졌다. 실물에서 멀어진 온라인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이익을 보고 즐거운 사람이 누구의 손실과 고통 덕분인지 더욱 더 알 수 없어졌다. 재래식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달리 첨단 대량살상무기는 살상하는 자가 죽는 자의 피와 고통을 더욱 더 모르듯이 ‘금융의 대량살상무기’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아무런 감각이 없다. 인터넷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포르노를 대량으로 유포하여 어린 아이들 영혼 조차 파괴하며 돈벌이하는 포르노 살상무기 업자들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고통에 미안하거나 괴로운 것이 아니라, 웃으면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죽음의 고통으로 밀어넣는 ‘좀비’로 불리는 ‘괴물인간’이 점점 더 늘어났다. 점점 더 많은 청소년들 조차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라는 감정이 없이 다양한 형태의 폭력으로 돈과 물건을 얻고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 비일비재한 믿기지 않는 시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