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국내 주류 언론의 ‘새로운 자본주의’ 담론

ㆍ작성자	달그림자
ㆍ작성일	2011-08-08

[흐름] 국내 주류 언론의 ‘새로운 자본주의’ 담론

몇 일전, 국내 한 신문이 주목할 만한 기획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제목은 “이제 ‘자본주의 4.0’이다”, 작은 제목은 ‘한계 부딫힌 50년 한강의 기적...다 같이 행복한 성장으로 가야: 1.0 자유방임 고전자본주의-> 2.0 정부 주도 수정자본주의-> 3.0 시장주도 신자유주의->4.0 따뜻한 자본주의’다.

진보언론이 아니라 신뢰도는 낮지만 영향력은 국내 1위라는 주류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의 기사다. 민영화, 규제완화, 무한경쟁, 세계화 등을 내세운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이 허물어진지 3년만에 ‘시장주도 신자유주의’의 용도폐기를 선언한 것이다. 이 신문은 ‘대기업들 좋은 실적은 중소기업, 서민몫을 뺏은 것’ 62%, ‘대기업은 잘나가는데 내 살림살이는 팍팍’ 82%, ‘저소득층도 고소득층도 성장보다 분배가 중요’ 등의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한다. 그리고 현대사의 우등생인 한국자본주의도 전지구적 무한경쟁에서 탈락한 패자(敗者)들의 불만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그 대안으로 ‘정글’의 승자독식 먹이사슬을 끊고, 키 높은 침엽수에서부터 바닥의 이끼까지 모두 제 역할을 하는 공생(共生)의 숲처럼 새로운 자본주의를 열어 가자고 한다. 그 주체는 ‘자본주의의 키 플레이어 시장과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랜 세월 세계를 지배해 온 미국식 시장주도 자본주의가 철저한 개인주의와 적자생존론에 기초해 있는 데 비해, 이 담론은 대기업의 독과점이 중소기업을 희생시키고 대기업 자신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인식에 근거한 생태계 이론과 공생론을 도입한 것은 중대한 긍정적 변화라 할 만한다. ‘다 같이 행복한 성장’이라는 목표는 많은 약자들을 희생시켜 온 ‘성장우선론’을 넘어서 보편적인 공감을 살 수 있다. ‘행복’ 담론을 경제담론 속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 세계자본주의 자체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쉽지 않은 대위기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는 시절인데, 진정으로 ‘다 같이 행복한 성장’을 추구한다면, ‘자본주의’에 ‘집착’할 아무런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 동안 보수적 정치세력이나 보수 학계와 함께 미국식 신자유주의-세계화의 나팔수가 되어 온 당사자로서 이런 주장은 용기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대한 자기 오류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언물에 세수한 듯이 내놓는 이런 노회한 주장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힘들다. ‘새로운 주장’이란 실은 변화한 시류에 맟추어 자기 이익을 취하는 오래된, 새롭지 않은 변신의 한 양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 같이 행복한 성장’을 하려면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과 민간의 농민, 노동자에서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주체가 되어야 마땅함에도 굳이 ‘시장과 기업’을 주체로 삼은 것은 구태의연하다. 주체 중의 주체인 기업, 대기업의 각성에 기대려면 영세농민이나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더 희생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시장’의 비인격적, 구조적 무질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

누가 주체가 되건 이런 ‘공생’이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나 철학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 ? 이 신문은 지난 해 말 미국의 한 이코노미스트이나 저널리스트(아나톨 카레츠키)의 저서 [자본주의 4.0]에 근거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에 비해 같은 시기 또 다른 주류 언론인 [매일경제신문] 또한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 진단과 함께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식 기업 주도 신자유주의를 열렬히 옹호 해온 이 신문 또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 ‘신자유주의=성장’ 시대는 끝”이라 선언하며, ‘아시아에 맞는 새 사상’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올해 10월의 세계지식포럼에 정의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마이클 샌델 교수를 초빙해 놓고는 ‘아시아노믹스의 바탕에 정의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울러 최근 한국학진흥원이 한국경제성장에서 한국적 가치를 발굴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주최한 ‘유교와 경영 포럼’의 논의를 인용해 소개하고 있다. 우선 20세기 초 이후 최근까지 서구자본주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자본주의 변천과정과 그 주도원리를 ‘20세기 초중반의 습득/초기자본주의->1960-80년대의 체화/정부주도 계획경제->1990-2000년대 중반 불만누적/시장주도경제 ->2000년대 중반 -2010년대 위기/시장탐욕 억제’로 정리하였다. 이어서 2010년대 이후에는 서구 이식자본주의가 양극화 등으로 한계에 달한 만큼 ‘한국적 자본주의 창조’ 단계로 가야하며, 이를 위해 한국경제가 ‘근본’으로 돌아가 ‘인의(仁義)와 이(利)의 조화’가 주도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담론은 시장경제의 학문적, 문화적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아가 더우기 한 동안 일각에서 유행한 ‘유교자본주의론’이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원인을 찾는 차원에서 근면·교육·가족·충효 중시 문화, 집단주의 문화, 정부주도 개발방식 등에 주목한 것과 다른 면이 있다. 여기서 제기하는 ‘한국적 자본주의의 근본’은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적 가치로서 유교가 아니라, 기존 경제성장 방식의 부작용과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IMF 사태 이후 ‘상도’, ‘김만덕’ 등 소설과 드라마에서 제시하던 오래된 미래의 해법을 학계와 주류 언론에서 다룬 것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변화다.

과제는 많다. 한국적, 동아시아적, 아시아적 정체성을 밝히는 것은 초보적인 과제다. 위험한 폐쇄적 민족주의, 지역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한국적, 아시아적인 것을 세계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하는 것은 보다 큰 과제다. 어차피 우리나라도 개인에서 국가 단위까지 세계 만국과 일상적으로 문물교류하고 연관하며, 국내에 깊숙히 서양이나 동남아 등의 비한국적 종교, 학문 등이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도 특정의 기존 철학, 사상, 종교의 사고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 원초적인 과제다. 국가적, 세계적 과제 해결 이전에 가족, 이웃, 직장에서의 일상생활에서도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