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신, 단일세계시장, 공멸의 경제학

ㆍ작성자	달그림자
ㆍ작성일	2015-01-11

‘공간이 없는 추상적 거래 메카니즘’이란 류의 시장 개념의 타당성 여부와 함께 더 따져야 할 문제는 이 개념이 정확히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 개념이 어떻게 여태 전세계를 지배하다시피하는 경제학 교과서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 개념은 누구에게 이익을 주기에 교육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 ? 이런 것들이다.

‘공간없는 시장’의 구체적 의미에 대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 중에서도 존경받는 스티글리츠(J. Stiglitz)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시장’이란 용어는 분주한 장터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 사용되곤 하지만, 대부분의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정식 장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구매자와 판매자가 존재하지만, 경제학자들은 마치 모든 거래가 일어나는 단일의 장터가 존재하는 것처럼 결과를 분석한다”. 말하자면 ‘공간없는 추상적 시장’이란 ‘하나의 지구촌 시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구 기독교 문화권이 세계 각국, 각 문화권의 ‘토착신’ 개념을 인정하지 않고, 유일신 개념을 주장하듯이 ‘하나의 보이지 않는 손’, ‘하나의 지구시장’ 개념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사회적 공간에 따라 시장이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의 글로벌 시장인가 ? 근대에 들어서 사유화되고, 상품화된 토지/부동산은 국가라는 사회적 단위별로 시장이 확연하게 나누어진다. 근대 시장경제는 대단히 발전, 진보되었다 하지만 특정 강대국이 다른 국가의 땅과 그 위의 자원, 인간을 물리적 힘으로 지배하는 ‘땅 빼앗기 놀음’을 해 온 것은 변함이 없다. 최근에는 돈 많은 중국 사람들이 미국이나 한국 등 세계 도처의 땅을 사들이고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땅을 국경을 넘나드는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 늘어나지만, 토지시장보다 더 국가별 경계가 엄격하고 이동성이 약한 것은 노동시장이다. 거주이전, 직업선택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그것은 국가 공간을 결코 넘지 못하는 주장이다.

노동시장보다 생산물시장보다 자유로운, 가장 자유로운 화폐금융시장은 과연 글로벌 단일시장인가 ? 미국민은 달러로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지만, 한국 돈으로 미국 상품은 커녕, 중동에서 석유 한 방울 사 올 수가 없고, 이웃 일본, 중국 물건도 쉽게 살 수 없다. 땅이나 사람 뿐만 아니라 법정통화인 돈도 국적이 있는 것이다. 하나의 단일시장이라면, 하나의 단일화폐가 있어야 하는데 강대국간의 경쟁적인 통화증발 에 따른 통화전쟁, 환율전쟁이 갈수록 격심한데,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라는 한국의 정부나 한국은행은 눈치만 보고 전전긍긍할 뿐이다.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고, 이런 현실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경제학자들이 왜 교과서에서는 황당한 ‘공간없는 단일 글로벌 시장’ 개념을 자기모순적으로 고수하고 있는가 ? 꿈쩍도 하지 않는 토지라는 생산요소는 모든 개별적 개인, 기업, 정부가 그 위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적 편의상 배제했다는 설명은 기막히지만 가능한 하나의 설명방식이다. 문제는 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그런 시장 개념이 그런 개념을 만들고 사용한 특정 국가 경제학자의 이익에 맞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시 말하면, ‘공간없는 시장’ 개념은 특정의 공간 장터, 지역의 공간 범위/경계를 무시하고 무엇인가 팔 것이 있고, 팔아먹을 경쟁력이 있는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개념이다. 국내의 지역별 경계의 장애물을 넘어서서 거침없이 전국 시장을 장악하고 싶은 기업, 나아가 전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싶은 기업, 그런 기업이 많은 강대국이 원하는 시장 개념인 것이다.

그 강대국은 바로 근대의 경제학을 처음 만들고, 처음으로 ‘해지는 날이 없는 제국’을 만든 대영제국이요, 그 뒤를 이은 나라는 스스로 ‘제국’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국이다(이미 20세기 초반인 1931년에 뉴욕 맨허튼에 지은 세계최고층 빌딩에 ‘제국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란 이름을 붙인 것을 상기해 보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진 후, 미국이 ‘국경없는 무한경쟁 시장’ 개념으로 사상 처음으로 제조업만이 아니라 자신이 경쟁력이 있는 1차산업과 3차산업까지 시장개방 대상으로 포함하는 세계무역기구(WTO)를 강제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통치를 가능하게 한 개념이 바로 ‘공간없는 글로벌 단일시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미국의 스티글리츠는 19세기 말 영국 마샬 만든 최초의 [경제원론(Principles of Economics)'는 물론 20세기 내내 세계적 권위를 가졌던 사무엘슨(P. A. samuelson)의 [경제원론] 모두 ‘오늘날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며, 가장 파격적인 내용과 구성의 경제학(Economics)라는 교과서를 내고, 비인간적 세계화와 IMF사태 당시 미국/IMF의 한국에 대한 가혹한 신탁통치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경제학] 교과서에는 여전히 토지시장이 없으며, ‘모든 거래가 일어나는 단일의 장터’ 개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제학 교과서는 어떤가 ? 전설적인 서울대 조 순 교수의 [경제학원론]이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미국 경제학 배끼기는 사실상 전혀 변함이 없고, 근래에는 미국의 저명 경제학 교수들의 교과서를 번역하여 팔아먹고 강의하는 ‘경제교육의 식민지’ 성격이 더 심해졌다. 중등학교에서는 세계지리, 한국지리를 가르치고, 그 속에는 자연지리, 경제지리 아런 내용이 들어가 있지만, 지리학과 경제학의 분리 현상은 고교에서나 대학에서나 마찬가지다. 미국 경제학 교과서에 공간/지리 개념이 없으니 ‘당연히’ 없다(기존 지리학, 경제지리학 자체도 문제를 안고 있고, 공간/토지없는 맑스경제학을 넘어서려는 좌파 경제지리학도 크게 보아 마찬가지로 보인다).

이런 비현실적인 경제학의 시장 개념과 그것에 기초한 시장이론은 누구에게 이익인가 ? 약소국이 미국식 ‘선진경제학’에 찌들어 있으면 제 나라 문제의 진단도 해결책도 미국에서 찾으니 IMF사태/신탁통치에서 경험한 것처럼 미국에 이익이고 한국에 절대 불리하다. 그러나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로 한국의 IMF 사태보다 보기에 따라서는 더 심하게 망가졌으니, ‘있는 그대로의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관념의 거품은 일시적으로 누군가에게 이익이 될 수 있지만 결국은 모두에게 고통의 굴레가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비현실적 관념을 공유하는 모두를 공멸로 이끄는 것이다.

전세계를 창조한 사랑과 공의의 ‘보이지 않는’ 유일신이 실재하는지에 대해서 단정할 정도로 철학과 과학이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과 ‘공간없는 추상적 시장’, 혹은 ‘세계 단일시장’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한 적도 없는 가공의 조작된 개념이다. 이제 해체하고, 보다 현실적인 시장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