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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근대세계, 원주민/이주민문제(2-2)
작성자 달그림자
작성일 2017-06-01
   
역전:근대세계, 원주민/이주민문제(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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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대륙을 분할 점령하고, 그 자연과 원주민을 정복하는 유럽 국가 대열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외에 러시아도 뒤늦게 뛰어들었다. 러시아는 1741년에 표도르 1세가 덴마크 탐험가 비투스 베링에게 의뢰하여 다른 유럽국가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금의 알래스카를 ‘발견’하였다. 러시아는 인디언 이전의 인디언, 즉 오늘날 ‘이누이트’라 불리는 원주민의 알래스카를 정복하고, 당시 국제법에 의해 자신의 영토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기업을 통해서 이 지역을 지배, 관리하다가 1867년 미국에 팔아치웠다. 이 땅을 사들인 당시 미국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쓸모없는 거대한 냉장고’를 비싼 값에 샀다며 비난을 받았으나 석유의 발견 등으로 그 가치가 재평가되고, 미국의 최대 주가 되었다. 한반도의 7배나 되는 이 땅을 헐값에 잘못 판 러시아는 그 대신에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죄를 덜 짓게 되었다.

유럽 백인들이 이주하여 원주민들을 정복한 땅은 아메리카 대륙만이 아니라 잘 알려진대로뉴질랜드, 호주가 있다. 16세기부터 에버리진이라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Australian Aborigine)의 땅에 상륙한 백인 국가들간의 경쟁에서 영국이 승자가 되었다. 아메리카 식민지를 죄수들의 유형지로도 쓰던 영국은 미국독립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호주를 새로운 죄수 유형지로 쓰게 되었다. 이후 금광이 발견되면서 본격적으로 식민지로 개척되고, 이 과정에서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원숭이 사냥하듯 살육했고, 땅을 빼앗았다. 그리고 이 영국 식민지는 1901년 호주라는 독립국가의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호주에서는 원주민들과 이주 식민자들과의 관계가 북미보다 더 심대하게 변화되고 있다. 매년 1월 26일을 국가적 ‘개척의 날’로 각종 행사를 열며 기념해 왔다. 1788년 1월 26일, 영국 함대가 이주민을 이끌고 시드니에 상륙한 날이다. 영국 함대 상륙 이후 영국은 최소 75만명의 원주민의 존재를 무시하고, 호주 대륙을 ‘주인없는 땅’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원주민들이 질병, 기아, 학살로 죽었다. 이것을 당연한 문명화의 댓가로 여겨 왔으나 최근 호주의 몇 몇 주요 도시에서 원주민들과 일부 백인들이 합세하여 이 날을 ‘침략의 날’이라 부르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호주의 주류 지배층 대다수가 강한 저항을 보이고 있으나 변화의 움직임은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살아남아서 비참한 생존을 이어가던 에버리진들이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오랜 세월 시위와 법적 소송 등을 통해 싸움을 해 왔다. 1992년에 역사적 결실을 거두었다. 원주민 에디 마보가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마침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주인이 없었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판결했다. 이로써 토착 원주민들은 백인 식민지 국가 건설 이래 200여 년만에 비로소 그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고, 그 땅 위의 문화와 역사도 인정받게 되었다.

이어서 지난 2008년에는 케빈 러드 총리가 사상 처음으로 의회에서 낭독한 사과문을 통해서 동료 호주국민인 원주민들에게 고통과 깊은 슬픔, 손실을 안겨준 역대 정부와 의회의 법률과 정책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고, 호주 의회는 러드 총리의 사과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올해에는 1901년 건국 이후 호주에서 처음으로 원주민 출신 연방 각료가 탄생했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18일 원주민 출신인 켄 와이어트 보건부 차관을 노인 복지·원주민 보건 담당 장관으로 승진, 임명한 것이다.

호주 옆의 뉴질랜드에서는 1840년 영국이 통치권을 행사하고, 원주민 토지를 독점적으로 매입하는 대신 원주민들이 영국 백성으로서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상의 식민지 조약(와이탕키 조약)이 체결되었다. 영국은 이 조약 조차 지키지 않고 토지를 사실상 강탈하는 경우가 많아서 두 차례의 ‘마오리 전쟁’을 치른 후 유화적인 원주민 정책을 보였으나, 뉴질랜드의 독립 후에도 원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소수자 처지였다. 원주민들은 독자적인 왕국을 세우자는 ‘마오리 킹 운동’을 비롯하여 명예와 권리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 온 결과, 뉴질랜드 정부의 토지 수탈 등에 대한 사과를 넘어서 1995년 이래 원주민에 대해 금전적 배상과 부분적 토지 반환을 하기에 이르렀다.

뉴질랜드의 백인 중심 정부와 원주민 사이에서 올해 일어난 또 다른 극적인 변화의 하나는 언론에 널리 보도된 대로, 마오리족이 1870년대 이래 거의 150년의 긴 싸움 끝에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강에 대해 법적으로 인간의 지위를 끌어내며 이 강을 둘러싼 전통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뉴질랜드 의회는 15일 북섬에 있는 황거누이 강에 법적으로 인간의 위상을 갖게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으며, 이번 법 통과로 이 강은 권리와 의무, 책임 등 인간이 가진 것과 같은 법적인 지위를 갖게 되며, 마오리족 공동체가 임명한 대표자 1명과 정부가 임명한 대리인 1명이 공동으로 이를 대변하게 된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 법의 통과에 따라 마오리족 공동에 8천만 뉴질랜드달러(636억원)를 보상하고, 강의 보존을 위해 추가로 3천만 뉴질랜드달러(238억원)를 지원하게 된다(자연에 대해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올해의 뉴질랜드 사례가 세계 최초인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볼리비아는 2011년에 어머니인 지구의 생존권리를 보장하자는 법안, 일명 어머니 지구법(Earth Jurisprudence)을 명문화했다).

근대 이래 강대국 이주민과 원주민의 역사적 문제는 국제연합(UN) 차원에서도 이미 제기되고 해결책이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다. 유엔은 1980년대부터 20년 이상 논의한 끝에 2007년 9월 13일 총회에서 원주민권리선언 (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을 채택했다. 이 선언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국가들이의 이주민들이 현재의 영토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이전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토착민)들에 대한 학살 및 탄압, 강제 동화정책을 폈던 것을 중단하고,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원주민에게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며 동의 없이 몰수된 토지와 자원을 반환받을 수 있게 했으며, 고유 문화의 유지ㆍ부흥, 민족자결권을 보장한다고 돼 있다. 권리 선언이니, 선언일 뿐이며, 법적구속력은 없다. 그럼에도 선언 당시 미국ㆍ캐나다ㆍ호주ㆍ뉴질랜드 등 4개국은 국내법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가 이후 캐나다ㆍ호주ㆍ뉴질랜드가 입장을 바꾸자, 2010년 12월 16일 미국은 원주민권리선언을 채택한 마지막 국가가 되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원주민에 대한 사과결의문'이 포함된 법안에 서명한 것은 바로 그 1년 전이었다. 하원은 그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면책조항을 두어서 미국 인디언들이 제기하는 토지 관련 소송 등에 이 법안이 인디언들에게 유리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유엔 차원에서 원주민권리 선언이 채택된 것은 콜럼부스 이래 아메리카, 호주 등 대륙의 원주민을 정복하며 전개된 유럽 백인의 전세계적 근대화, 문명화, 발전/진보가 원천적으로 정당성이 없는 범죄행위라는 것을 인류의 양심과 지성으로 인정한 것이다. 원주민들의 동의없이 몰수한 토지와 자원의 반환 의무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원주민들의 땅/자연 위에 세워진 국가들의 존립 근거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전세계적 범위의 제국주의 지배를 통해서 서구 문명이 내세워 온 자유, 평등, 인권 사상은 물론 그 바탕의 근대 서구의 자연관, 인간관, 사회/경제관, 역사관도 송두리째 뒤흔들리면서, 원주민들의 세계관이 재조명되고 있다. 근대 서구문명에 대한 1970년대 이슬람 혁명보다 조용하지만, 더 심대하고, 더 보편적인 도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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