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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근대세계, 원주민/이주민문제(2-1)
작성자 달그림자
작성일 2017-05-09
   
역전:근대세계, 원주민/이주민문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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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과 크리스토퍼 콜럼부스는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에게는 역사책 속의 특정 연도, 인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다. 남미에는 콜럼부스라는 나라가 있다. 남미에서 드물게 한국전쟁 참전국이니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나라다. 캐나다에는 브리티시 콜럼비아라는 명칭의 커다란 주가 있다. 미국에는 콜럼부스라는 이름의 도시가 여럿 있고, 거리 이름은 수 없이 더 많다. 콜럼비아 대학, 우주선 콜럼비아호도 있다.

비록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하는 바람에 ‘아메리카’ 대륙의 이름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에게 빼앗겼지만, 매년 10월 12일을 전후한 남북아메리카 전역의 ‘콜럼부스 데이’는 크리스토퍼 콜럼부스라는 한 인물을 살아있게 하는 최고의 의례다. 콜럼부스가 이탈리아 출신이라 이탈리아인들, 이탈리안 아메리칸의 애정과 자부심은 남다르다. 1992년에는 미국에서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 행사를 크게 열었다. 콜럼부스가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서 역사적인 항해를 시작한 도시, ‘세빌리아의 이발사’라는 음악으로 유명한 스페인 세비아에서는 그 해에 세비아세계엑스포 행사를 가졌다.

  그런데 인간 콜럼부스와 근대세계의 시작으로 평가되어 온 그의 ‘신대륙 발견’(과 이후의 ‘지리상 대발견’)은 오래 전부터 점점 더 크고 많은 반론에 부딛혀 왔다. 1992년은 사실 이러한 반론과 논쟁의 거대한 장이기도 했다. 미국의 교육계를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 발견’의 공과와 콜럼부스의 업적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사회과학 국가위원회는 콜럼부스가 서반구에 전파시킨 질병과 전쟁 등 부정적인 결과도 학생들에게 인식시키도록 촉구하는 지침을 교사들에게 시달함으로써 논쟁을 확산시켰다. 이런 일은 나름대로 양심적으로 학문과 교육을 하려는 백인 주류사회에서 나온 것임에 비해, 원주민들의 입장은 더 나아갔다. 즉 토착 인디언들은 이른바 ‘신대륙 발견’이 엄연한 침략으로 이어졌던 만큼 축하의 대상이 아니라 규탄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500주년을 앞둔 1991년에는 미국 의회가 대공황기인 1934년에 연방공휴일로 지정한 10월12일, ‘콜럼버스데이’를 원주민이 많은 노스다코다 주에서 처음으로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뒤집었다. 그리고 더 많은 지역 인디언들이 1992년을 ‘원주민의 해’로 선포하고, 양심적인 백인들과 연대하여 2백여 사회단체와 함께 정부와는 별도의 행사를 벌였다. 1992년에는 진보적인 도시로 알려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는 시 차원에서 기념일 명칭을 ‘원주민의 날’로 바꾸는 큰 변화가 있었다. 최근 2015년에는 앨버커키와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 미네소타 주의 세인트폴, 워싱턴 주의 올림피아 등 9개 도시에서 ‘탐험가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과 미주·유럽의 문화교류를 축하’하는 대신 ‘식민지주의와 노예제, 차별 등으로 잃어버린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억하는 하루를 갖겠다’는 의미로 ‘원주민의 날’ 명칭 변경 대열에 참여했다. 콜럼부스에 대한 평가도 ‘위대한 도전정신을 가진 모험가’에서 ‘탐욕스러운 침략자, 살인자’로 역전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계속된 원주민 부모와 자녀의 강제분리 교육이라는 야만적 백인동화정책에 대하여 최근 정부 차원에서 '진실과 화해규명위원회'(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의 조사보고서를 내고, 조심스레 과오를 인정했다.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인디언 대학살이 이루어진 미국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처음으로 연례 원주민부족회의를 개최하고, 인디언 학살과 강제이주의 악명이 가장 높은 잭슨 대통령을 20달러 화폐에서 지웠다. 그런데 최근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잭슨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오늘날 미국 전체 인구의 1%, 300만명이 채 안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 인디언들은 70% 정도가 도시에 살고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으로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브라질을 제외하고 주로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중남미의 경우, 북미와 사정이 상당히 다르다. 원주민이 거의 전멸한 쿠바의 경우를 제외하고 중남미 대륙 다른 지역들에서는 19세기 초반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인디오로 불리는 원주민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고, 그리고 이들과 원주민·백인 사이의 혼혈인, 메스티조의 끈질긴 독립전쟁으로 스페인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을 이루었다. 이들 나라에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이후에도 미국의 직간접 지배와 내부 독재에 대한 저항은 대표적으로 쿠바·게바라의 혁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근래에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지배에 저항하여 원주민 출신이 선거를 통해서 사상 대통령에 당선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페루에서는 2001년 안데스 산맥 시골 출신으로 미국 유학까지 한 톨레도가 1823년 독립 이래 사상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정치경제적으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온건 개혁 노선을 보였다. 그런데, 문화적으로는 스페인에 의해 파괴된 옛날 잉카(태양의 아들)제국의 영광을 회복하겠다며, 맞추픽추에서 취임식을 가져 서구의 문화식민지에 대한 ‘혁명적 독립’을 선언했다.
  
  2006년에는 남미에서 원주민 비율이 가장 높으면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에서는 코카 재배농민 출신의 모랄레스가 이 나라 사상 첫 원주민 대통령이 되었다. 사회주의정당의 후보였던 그는 ‘남미의 탈레반’이라는 미국의 비난과 원조중단 위협 속에서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사상 최장수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기술·자원협력을 위해 한국도 방문한 그 역시 서구 가톨릭 문화를 거부하고, 잉카 시대의 음악, 의상 등으로 전통문화를 복원하며, ‘양복’ 입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신식민주의’ 거부와 ‘자본주의의 폐지’를 주장한 그는 미국으로부터 ‘남미의 탈레반’이라 불렀으니, 20세기의 ‘이슬람 혁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톨레도와 마찬가지로 말년에는 부정·부패 등으로 권력을 내놓아야 했다.

스페인 지배 이래 가톨릭 종교권력이 근래 남미에 대해 보인 변화 또한 중대하다. 독일 출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브라질에서 연설 중 가톨릭 교회는 남미 원주민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인디언 부족들은 오히려 유럽 선교사들을 환영했다고 말해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은 2000년에 신대륙 원주민 학살과 중세 종교재판 등을 가톨릭 교회의 과오라고 고백하며 공식적인 용서를 구했다.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소속으로 선출된 최초의 교황이며, 더 중요하게는 최초의 비유럽-남미 출신 교황이다. 가톨릭 종교권력의 중대한 역사적, 지정학적 변화인 것이다. 그는 미국 중심의 ‘신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독재’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식민시대에 로마가톨릭교회가 저지른 죄, 그리고 소위 '아메리카 정복'의 이름으로 원주민에게 행해진 모든 죄”에 대해 “겸허한 용서”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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