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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인디언, 어떤 인디언
작성자 달그림자
작성일 2017-02-11
   
백인, 인디언, 어떤 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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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인디언으로 불린 미국 원주민들을 처음 접한 것은 주로 총잡이 보안관과 이들이 쫓는 ‘잔인한 악당 인디언’ 스토리가 나오는 미국 서부 영화였다. 그 후에는 많이 본 것은 생맥주 집 간판이었다. 한국의 생맥주 집의 간판의 그림은 거의 다 두 종류 중 하나였다. 지금도 흔히 그렇지만, 하나는 서부의 총잡이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인디언 부족 중에서도 아파치였다. 술맛과 안주가 좋고 싸기만 하면 아무 집이나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둘 중 하나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을 것인데, 서부 총잡이 간판 집은 일부러 피하고 아파치 간판 집을 찾아가는 편이었다.

백인 ‘보안관들’이 인디언에 대해 결코 정의롭지 않았고, 인디언들이 백인들로부터 얼마나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다가, 싸우다가 죽어갔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금도 ‘보호정책’이라는 사실상의 ‘고사작전’ 아래서 뿌리뽑힌 정체성, 실업 등으로 인한 얼마나 많은 인디안들이 정신적, 물질적 빈곤에 시달리고, 알콜, 마약 등에 의존하다고 있는지 알면 알수록 피해자,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대단히 정의로운 일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것은 동물세계에서도 흔히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고통을 겪으며 살아남은 어떤 인디언의 이야기를 보자.

추나라는 인디언 노인은 19세기 중반 자신의 소년 시절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1847년, 내가 14살 때였다. 사람들이 나더러 어린 아이라고 하면 모욕을 받는 느낌이었고, 어른같다고 하면 얼떨떨한 느낌이 들던 시절이었다. 내가 마당에서 막대기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잇는데 스컬리빌에 갔던 아버지와 외삼촌께서 돌아오셨다.”

이튿날 촉토족 부족회의를 소집한 아버지와 외삼촌은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아일랜드라는 나라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추나는 누나와 동네 아이들과 함께 한쪽 구석에서 눈을 말똥말똥 뜬 채 그 회의를 지켜봤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뭇잎이나 풀까지 먹고 있대요. 걸어가다가 죽는 사람들도 많고 죽은 사람들의 입은 초록색으로 물들고…. 우리는 그들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어요”.

1845~1849년 아일랜드는 당시 전 유럽을 휩쓴 감자 마름병 때문에 ‘아일랜드 감자 기근’이라는 대기근을 겪었다. 4년 동안 아일랜드에서는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죽거나 기근과 관련된 병으로 사망했고 100만명 이상이 미국 등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 이러한 소식은 미국 전역에도 알려지고, 아메리카 인디언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부족들은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나훌로(유럽사람들)요. 나훌로는 우리 땅을 빼앗아 갔소. 그들은 우리 종족들을 죽게 했소. 머나먼 행군을 하는 동안 수많은 우리 부족 사람들이 죽어 그 뼈가 길가에 흩어졌는데, 우리가 왜 도와야 한단 말이오?”

촉토족, 체로키족 등은 미국 동남부 미시시피 지역에 살던 농경민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백인들의 종교, 교육 등을 받아들여 북아메리카에서 드물게 문명화된(civilized) 부족이었다. 그러나 백인정부의 군대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 문명화된 원주민 부족들 조차 중부 오클라호마 지역으로 강제이주시켰다. 그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과 노인들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언 땅을 파지 못해 사체를 나뭇가지에 올려놓은 채 무려 800㎞를 걸어야 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의 하나인 ‘눈물의 행렬’(The Trail of Tears)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오클하호마에 정착해서, 유럽의 대기근 소식을 접하기 불과 10여년 전의 일이었다. 백인들에 대한 원한이 아직 뼈에 사무치니, 백인들을 돕자는 데 반발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긴 침묵 끝에 ‘바위 여자’라는 뜻의 ‘탈리호요’로 불리던 증조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늙어서 이도 다 빠졌소. 눈도 잘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나에게 다가와요. 우리는 그 머나먼 눈물의 길을 걸었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지금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도움은 시간을 꿰뚫어 쏘는 화살과 같습니다. 그 화살은 여러 해가 지난 다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축복의 화살로 내려 앉을겁니다.”

할머니의 이 이야기를 듣고 부족들 마음이 움직여서 아일랜드 사람을 돕기로 하고, 170달러(현재의 약 5500달러, 600만원)를 성금으로 보냈다. 당시 추나는 그 증조할머니로부터 갓난 아기이던 그의 형이 ‘눈물의 행렬’ 중에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내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한다면, 그 겨울의 눈덮인 길가에서 죽어가던 내 형을 외면하던 나훌로(유럽)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반문하면서 자신도 도움에 동참했다고 한다.

이 인디언 촉토족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당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이후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마리 루이스 피츠패트릭이라는가 미국 오클라호마를 오가며 추나와 다른 촉토족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인디언의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불의한 자들과 그 친구들에 대한 분노와 정당하고 용기있는 응징, 혹은 외면이 스스로 ‘적’을 닮은 ‘괴물’로 만드는 예는 인간 세상사에서 너무나 많이 반복되어 왔음을 알고 있다. 이 촉토족 인디언은 ‘원수’를 ‘사랑’으로 대함으로써 백인들을 감사하게, 부끄럽게 만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출신들의 ‘나훌로’ 백인에 대한 증오감의 노예가 되어 있던 그들 자신까지도 그 감정에서 풀려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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