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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동물도 '일'을 하는가 ?
작성자 달그림자
작성일 2016-11-25
   
자연-동물도 '일'을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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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로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어 다음 생에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나무는 땅에 뿌리내려 힘겹게 물을 빨아올려야 살 수 있는데, 그 일 조차 하기 싫다고 아예 다음 생에는 돌로 태어나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 시대 ‘일’의 개념은 매우 혼란스럽다. 심지어 타락한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여전히 그 광풍이 완전히 멈추지 않는 금융자본주의 일각에서 유행해 온 ‘돈이 일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요컨대, 미련스럽게 일해서 잔돈 벌 생각 말고, 돈을 잘 굴려서 큰돈을 벌어라’는 거다.

과연 돈도 일을 하는가 ? 도대체 일이란 무엇인가 ? 이런 의문 이전에 ‘돈이 일한다’는 사회적 관념은 돈 많은 사람이나 기관이 땀흘려 노력하지 않고 돈으로 돈 버는 사회경제적 행위, 그리고 그 만큼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각해지는 것도 ‘일’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게 된다. 머리 싸메고 사무노동을 한다든가, 육체노동을 해서 겨우 밥벌이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우습게 여기고, 스스로 열등감,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돈이 일해서 돈을 번다’는 관념은 사실상 확고한 학문적 시민권을 갖고 있다. 우리 시대 주류의 경제학 이론 체계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생산 3요소 이론’은 인간의 ‘노동’과 함께 ‘자본’이 ‘생산 활동’의 요소로 주장하니 ‘자본이 일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자본이 기계와 같은 실물자본이냐, 화폐자본이냐 하는 것은 자본이 돈벌이 수단인 한,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토지도 일하는가, 더 넓혀서 자연도 일하는가 ? 이 문제는 보다 더 분명하게, 도대체 일의 주체는 누구인가, 혹은 일의 주체는 무엇인가 ? 라는 문제를 내포한다. 먼저 토지에 대해서 보자. 앞서 본 생산3요소 이론에 의하면 자본과 마찬가지로 토지도 생산요소이며, 따라서 토지도 ‘생산적 일’을 한다. 토지가 일을 한다면, 생산의 성과물은 당연히 토지가 가져 가는가 ? 물론 그렇지 않고, 땅 가진 사람이 가져간다. 설령 토지 소유자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토지의 ‘생산적 활동’ 덕분에 땀흘려 일한 노동자, 농민보다 더 많은 소득을 가져간다(근대 경제학의 여명기에 페티(W. Petty)는 ‘노동은 부의 아버지, 토지는 부의 어머니’라 했다(W. Petty)). 생산물은 노동에 대해서는 임금이, 자본에는 이윤이, 토지에는 지대가 분배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이론이 바로 ‘천지창조 이후 일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 아들과 성령’의 삼위일체와 같은 ‘경제학적 삼위일체론’이다.

아무 일하지 않고 단지 토지를 소유하고 임대하는 것만으로 땀흘려 일한 농민의 수확을 합법적으로, 불법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하다. 이것은 원천적으로 토지라는 자연물에 대한 근대적 사적 소유 그 자체의 문제를 의미한다. 이 문제는 오늘날은 도시화와 ‘미친’ 땅값/부동산 값과 임대료 등 도시 지대(urban rent)의 문제와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이 문제는 인디언들의 땅을 주로 강탈하여 나라를 세운 미국의 경우에는 이 문제가 국가적 원죄에 해당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미국의 경제학 교과서에 토지/공간을 아예 배제해 온 것은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더 깊게 들어가기 전에 ‘토지’에 대한 논의를 일의 주체와 관련하여 ‘자연’에 대한 논의로 넓혀 보자. ‘토지’는 넓은 의미로 천지(天地)라고 할 때의 지, 하늘 아래 땅과 바다를 모두 내포한다. 그 속의 동식물도 모두 내포한다. 자연으로서 토지를 생산요소라 하면 하늘은 생산요소가 아닌가 ? 비와 바람, 해와 달과 별들까지 모든 대자연의 우주적 존재들이 산과 들, 강과 바다의 동식물들을 길러준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농어업과 임업 등과 이에 기초한 모든 산업과 직업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토지와 같이 아무런 댓가없이 기여한다.

자연과학 중에서 물리학에도 ‘일’(work)이라는 개념이 있다. 여기서는 어떤 물체에 힘을 가하는 것이며, 그 일의 양은 물체에 가한 힘의 크기와 물체가 움직인 거리의 곱(W=FXS)으로 표시된다. 사람이 바위 같은 자연물에 힘을 가하는 것이나, 바람이 돌에 힘을 가하는 것이나 모두 적용되는 개념으로 그야말로 물리적 힘이 작용하는 한 양상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어떠한가 ? 맨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면 나무라는 식물도 일하는가, 그리고 동물도 일하는가 ?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일’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무가 땅의 물을 빨아 올리고, 소가 들에서 풀을 뜯는 행위는 물리적 힘의 작용 중에서도 생명의 유지라는 목적성이 있는 활동이다. 단순한 물리적 운동, 혹은 단순한 행위 혹은 활동이 아니라 생명 유지 위한 목적적 활동이라는 점에서 이런 활동은 인간의 일과 다름이 있는가 ?

이 문제는 사실은 동물이라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중대한 기존 근대 서구적 관점의 변화와 관련된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기존의 진화론적 인간관에 의하면 고등지능을 가진 인간은 진화의 어느 시점부터 도구를 써서 일을 하기 시작하여 동물보다 우월하다. 그런데 최근에야 눈먼 우리 인간들은 눈을 제대로 뜨고 원숭이나 새를 관찰하여 이들 동물들도 도구를 써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원숭이, 개미 등을 연구하는 동물학에서 동물들이 ‘일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심지어 동물들이 ‘조직’을 이루고, ‘동물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학과 인간 사회과학의 경계도 더 허물어지고 있다.

‘직장인들을 위한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에는 부하들에게 일을 시켜놓고 성과를 가로채는 여우 같은 상사,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 그를 경쟁에서 탈락시키려는 야비한 늑대 임원, 일보다 뒷담화와 줄 서기에 바쁜 당나귀 같은 동료, 온종일 자기 일만 하는 일개미 등이 있다.

결국 일에 대한 논의는 인간이란 존재와 동물, 식물을 포함한 자연이란 존재에 대한 고통스러운 반성적 논의다. 일을 통해서 드러나는 우리 인간은 정녕 본질적으로 동물과 같은 존재인가 ? (11/2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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