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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경제, 종교와 자연법
작성자 달그림자
작성일 2016-10-30
   
근대경제, 종교와 자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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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서양문명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종교와 과학,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사이의 끝없는 내적 모순, 불합리와 갈등을 보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양자 사이에 기묘한 동거도 여러 가지 양상으로 있어 왔다. 경제학계에서 2008년 글로벌 대불황을 초래한 신자유주의자들은 한편으로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대해 맹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 관념과 권위에 기초하여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동되는 시장의 수요/공급법칙에 반하는 정부의 개입을 ‘창조주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기도 하면서 주류의 학문적, 사회적 권력을 누려왔다.

그런데 ‘과학적 경제학’과 ‘신학적 경제학’의 동거는 그 뿌리가 매우 깊어서 근대의 출발점에 닿아 있다. 탈중세-근대를 연 서구의 학문의 갈래 중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로 대표되는 자연과학의 혁명이 중세까지의 교회/지구 중심의 세계관에 중대한 타격을 가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지동설, 중력의 법칙 등이 드러내는 새로운 우주관, 인간관은 우주 만물이 창조주의 섭리와 계시에 따라 움직인다는 기독교의 그것과 모순되는가 ? 생사를 걸어야 하는 이 문제 앞에 서구 계몽주의 지성들은 ‘종교적 믿음의 신’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된 새로운 신’을 발견했다. 즉 우주와 인간의 존재론적 기원은 유일신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며, 신은 우주를 창조한 이후에는 시계를 만든 시계공이 자동으로 시계가 돌아가게 하듯이 우주에 자연법칙을 심어서 자동으로 운행하게 하고 개입, 계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법칙에 따르는 것은 바로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이런 이신론(理神論, Deism)의 관념에 의하면, 지상의 인간은 신에게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자연이나 인간세상의 법칙을 알아내고, 이 자연법칙에 따라, 이 법칙을 이용하며 살면 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신학적으로는 정통적 신학과 무신론 사이의 과도기에 해당하는 이런 세계관은 그것이 태동하던 당시에는 대단히 진보적, 혁명적인 역할을 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계시하지 않는 신의 관념에 의해 기존 교회체제의 존립근거를 밑뿌리부터 흔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권위가 교황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며 로마 중심 교회체제와 대립하면서 세속화되어가는 절대주의/중상주의 국가권력에 대해 인민/시장의 자유방임을 요구했고, 자유방임이 수용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절대주의 국가/왕권에 대한 혁명으로 나아갔다.

근대 혁명을 뒷받침한 경제사상가들 중에서 아담 스미스보다 앞선 ‘최초의 경제학자/자유주의자’라 평가되기도 하는 프랑스의 께네(F. Quesnay)가 있다. 인간의 병을 고치는 저명한 의사였던 께네는 루이 14세 치하의 병든 프랑스 경제/사회를 진단하여 인체 혈액순환도에서 착안한 경제표(Tableau Economique)를 만들었다. 이에 기반하여 그는 절대주의/중상주의 체제를 반대하여 정부의 자유방임(Laissez Faire)과 중농주의(重農主義)를 주창하였다. 농업만이 순생산을 낳는다는 논리에 기초한 ‘중농주의(physiocracy)’가 실은 ‘자연의 지배’(physio+cracy)라는 것은 최초의 근대적 경제학이 자연법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명성있는 도덕철학자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써서 경제학자로서 다시 명성을 떨치기 전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프랑스의 께네와 교유하면서 많이 배웠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공익’을 내세우는 당대의 부패한 지도층이 실은 사익을 추구하는 시장 사람들보다 오히려 공익 실현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고발하며 ‘작은 정부’와 ‘시장의 자유’를 주장했다. 합리주의,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신론을 받아들인 아담 스미스는 경제와 사회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민간에 자유를 주면 ‘보이지 않는 손’의 ‘자연적 질서(natural order)’에 따라 조화와 풍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담 스미스는 바로 이런 자유방임 사상에 따라 영국의 특정 지역에 대한 독점적 식민지 지배도 반대했다. 이런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온 1776년에 바로 영국의 식민지 상태에서 고통받던 미국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프랑스 혁명에 앞서서 독립혁명에 나서서 성공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동쪽 한편, 13개의 식민지역에서 절대 열세인 병력으로 거대 영국군에 맞서 식민지 독립혁명에 성공한 미국은 워싱턴을 비롯하여 그 독립세력, 그 혁명세력의 중심 인물들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며 지구상 최초의 근대 국가를 건설하였다. 따라서 다른 나라들이 가벼이 볼 수 없는 내적 품격과 힘을 보여 왔다.

널리 알려진 대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독립선언서에서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창조주가 준(天賦) 인간의 권리’로서 ‘생명과 자유, 행복추구’를 선언하고, 영국 왕정의 중상주의적 폭정에 항거하여 독립전쟁의 정당성과 권리를 주장했다. 그리고 독립 국가 미국(USA)에 넘치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와 풍요는 오랫동안 ‘아메리칸 드림’의 근거가 되어 왔다.

그러나 미국의 독립선언문에 나타난 창조주로부터 자연적으로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받은 ‘인간’에 서구적 창조주를 모르는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과 흑인은 포함되지 않아서 그 생명을 빼앗고, 자유를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심각한 야만과 불합리를 보여왔다.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쳐 그 자신이 다른 나라를 식민지, 반식민지로 만들거나 세계 도처 국가들의 독재를 유지하여 사상 유례없는 ‘제국’이 되는 또 다른 모순과 불합리를 보여왔다. 오늘날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 미국 사회 내부, 백인사회 내부 조차 사회경제적 격차와 분열과 갈등이 심해지고, 만성적 재정적자 또한 치유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내세운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운명도 재정위기, 만성실업,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로 드러나는 극우파의 득세 등으로 보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유로운 개인간의 고전적, 자연적 조화는 흔적 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진보적 혁명성을 상실한지 오래인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온전한 대안은 프랑스식 사회적 시장경제도, 이미 무너진 사회주의도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중세 신학/종교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유럽과 미국의 부실한 합리주의, 종교와 자연과학의 모순적 결합인 근대 서구적 계몽주의, 이신론적 자연법 사상의 극복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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