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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주체 인간, 인간론
작성자 달그림자
작성일 2016-10-03
   
일하는 주체 인간, 인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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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집밖에서, 제 나라/지역에서 남의 나라/지역에서, 이런 업종, 저런 업종에서, 땅이나 하늘에서 하루 하루 수행하는 일은 그 주체와 대상이 있다.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 관계적 행위로서의 ‘일’이 일답게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일하는 주체, 인간에 달려 있다.

흔히 경제중심적 관점에서 얘기되는 일, 더 좁게 ‘노동’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를 주로 말하지만, 농업 조차도 혼자 하는 일이 아닌 한, 인간은 자연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을 대상으로, 더 나아가 크고 작은 영역의 ‘인간사회’를 대상으로 일한다. 자연에서 멀어진 서비스업은, 그것이 하찮게 여기는 음식업 일이건 교육이나 정치건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일의 성격과 내용을 규정하는 면이 더 강하다. 그 사회적 관계의 양상은 집안 일이건, 국제적 차원의 일에서건 관계의 당사자인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의존한다. 따라서 일의 대상이 되는 자연에 대한 논의,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당사자,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논의는 일에 대한 논의의 전제이자 출발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을 상대하고 다른 인간을 상대하는 개별 인간은 본질적으로 어떤 존재인가 ? 어떤 존재로 인식하면서 일해 왔는가 ? 단순하면서도 거대한 이 문제는 많은 갈래의 주제를 갖고 있지만, 종교적 미신과 속박에서 해방되고자 한 근대 철학/경제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인식했다는 ‘상식’에서 출발하자.

오늘날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그 ‘원론’에서부터 우파나 좌파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합리적 경제주체’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런 이론은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전세계의 학문/교육세계에서 주류 중의 주류 지위를 차지해 왔다. 그런데 합리주의 철학의 본산지인 서양 학자들은 과연 서양인이나 비서양인이나 모두 합리적인 존재로 보았는가, 다시 말해서 합리주의 철학은 실질적으로 ‘동서양 인류’에 대한 보편적 철학이었는가 ?

서양의 철학과 과학/경제학을 수입해서 비서양에서도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 배우고 굳게 믿고 그 전제에 따라 일하고 살아 왔다. 그러나 서양 학자들은 과학기술 수준, 종교문화 등을 근거로 내심, 혹은 공공연히 서양/문명-선진국의 백인은 합리적인 존재이지만, 비서양/미개-후진국의 비백인은 비합리적이라고 믿거나 주장해 왔다. 근대-세계화의 출발로 간주되는 콜럼부스의 ‘지리상 대발견’ 이후 남미와 북미의 원주민, 아프리카 흑인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 이후 동양/아시아를 어떻게 대했는지 상기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학문적으로도 최근 ‘오리엔탈리즘’ 이론에서 드러난 바이다. 그리고 서양의 대학에서는 과학기술/경제의 우위를 현실적 기반으로 해서 근거로 ‘동양의 과학’, ‘동양의 철학’, ‘동양의 경제학’ 전통을 부정해 왔다. 이것은 근대 서양에서 나온 합리주의 철학이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철학이 아니라 서양인을 대상으로 하는 비보편적 철학일 뿐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비서양/동양인에 대한 비합리성 이론을 인정할 수 있는가, 동시에 서양인 자신에 대한 차별적, 우월적 합리성 이론은 인정할 수 있는가 ? 이 물음을 앞에두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인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나, 인간세상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왜 이다지도 불합리한가 ? 근대 이후 자연 착취적 경제/생활방식은 지구촌 전체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는 데 이르렀으니 얼마나 불합리한가 ? 더 많은 땅, 자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서양인들이 비서양인을 대상으로 벌여 온 야만적인 ‘일’들은 얼마나 불합리한가 ? 비서양을 지배하기 위해 서양의 국가들이 서로 벌여 온 격렬한 경쟁과 전쟁은 무엇이란 말인가 ? 인류 역사상 전쟁이 가장 적었다는 지난 수 십년의 ‘평화로운 시절’이 지나고 벌어진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일자리 대란, 이와 연관된 ‘테러와 대테러 전쟁’ 등은 모두 그들의 뿌리깊은 불합리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 근대 문명을 떠 받쳐 온 합리주의 철학은 전세계적 보편타당한 이론이 아니며, 서양에는 타당하고 동양에는 타당하지 않은 제한적으로 타당한 이론도 아니며, 사회역사의 거울에 비추어 전세계보편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엉터리 철학’인 것이다.

서양 내부의 지적 전통에서 합리주의를 부정하는 흐름은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염세주의 등의 이름으로 있어왔다. 경제학에서는 독일의 민족주의-역사학파 경제학에서 그런 면모가 강했다. 유럽 내에서도 선진국인 영국에 대항하여 사회역사적 역할을 한 이 독일의 경제학도 종국에는 ‘위대한 게르만족’의 인종주의, 파시스트 제국주의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근래 ‘포스트 모더니즘’ 경향의 철학계에서는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인간의 광기, 불합리성을 주장했으나 현실적 힘이 강력한 경제학계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금융위기를 전후하여 서양의 경제학 내부에서 ‘행동경제학’이라는 학파를 형성하는 일군의 학자들은 마침내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 나아가 인간의 불합리성, ‘예측가능할 정도로 비합리적인(predictably irrational)’ 인간들의 행동을 열심히 실증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은 거기까지다. 서양 지성이 ‘르네상스’로 그리스 고전과 인간의 이성을 재발견했으나, ‘합리적 인간’의 관념이 또 다른 거대한 미신임을 일각에서나마 자각하는 데 그렇게 많은 역사적 댓가와 그렇게 긴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종교적 미신에서 해방된 철학과 과학을 주장했지만 스스로 또 다른 비종교적 미신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합리적 인간의 대전제가 무너진 마당에 다시 ‘지적 설계자의 종교’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 가장 먼저 할 ‘일’은 나/너/우리 인간의 비합리성, 비합리적 인간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닐까 ? 그리고 그 비합리성의 원리를 알고, 진정으로 합리적 존재로 거듭나는 ‘(자기)교육’이 아닐까 ? 우리 인간이 이 일을 외면하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집단적으로나 아무 일도 일답게 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결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진실은 인간의 역사가 충분히 증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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