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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없는 성장, 일없는 일자리 ?
작성자 달그림자
작성일 2016-06-10
   
일자리 없는 성장, 일없는 일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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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제성장율이 몇 퍼센트인가, 1인당 국민소득이 몇 달러인가 이런 사안에 국가기관이나 국민들이나 목을 매다시피 하던 ‘성장 제일주의’ 시절이 있었다. 경제성장이 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득이 늘어나니 그럴만했다. 오랜 동안 그랬다.

그런데 위정자들이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해 놓고 당황하는 일이 생겼다. 선거 시즌이 되어 집권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낮아지는 것이다. 심층적 조사를 해 보니, 실은 국민총생산이 늘어나도 대부분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더 불행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J. 스티글리츠, A. 센)에게 부탁하여 국민총생산(GDP) 개념과 이론의 거품을 드러내고, ‘국민총행복’, ‘행복지수’란 걸 만들어냈다. 불과 몇 년 전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의 일이다. 국민총생산은 행복한 삶의 수단일 뿐인데, 수단과 목적을 혼동했단다(그 성과가 정리된 책 제목 ‘GDP는 틀렸다’의 원 제목은 ‘Mismeasuring our lives’다). 온 세상이 수단을 목적으로 잘못 알고, 우리네 삶을 잘못 계산되었다니...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

성장해도 행복하지 않은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고용없는 성장’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실업율이 좀 높아도 성장이 되고, 복지가 어느 정도 갗추어져 있으면 그럭저럭 살만하다. 그런데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실업자가 부지기수인데도 복지가 부실한 나라 사람들이 불행에 빠지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이 나라 정부는 국민총생산 대신에 고용율을 핵심적 국정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렇지만 천문학적 예산을 털어 넣어도 청년실업이나 노년실업문제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선거판에서는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내세워 놓고, 국민행복지수 조사하는 계획도 별 이유 없이 실행하지 않고 있다.

위정자들이 서서 누리고 있는 자리도 ‘일자리’다. ‘높은 자리’의 일자리다. 이런 일자리는 직업 통계상으로는 관리직, 산업통계상으로는 공공서비스직에 속한다. 이런 자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자리 창출’을 주문 외듯이 하는데, 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을까 ? 왜 오히려 줄어들까 ?

이 문제에 답하는 것은 개별 사업체, 개별 지역과 산업에서 국가로 갈수록, 그리고 갈수록 국가간 연관이 깊어져가는 국제적, 세계적 차원에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제 공장과 사무실까지 업무의 자동화가 가속화되고, 인공지능(AI)에 의한 '4차산업혁명'이 최고 수준이 정신노동 일자리까지 대거 줄일 거라는 마당에, 현상적 원인이 아니라 본질적 원인을 찾으려고 하면 더욱 더 그렇다.

근대 자본주의 생산양식,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한 사회정치체제는 그 자체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부단히 기존 일자리를 파괴해 왔다. 양을 키우고, 양모를 팔아서 돈벌이하려고 농민을 대책없이 대지로부터 몰아낸 종획운동, 기계와 증기기관을 도입하여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실현하면서도 기존 수공업 일자리를 대거 파괴한 산업혁명이 그랬다. 자연과학적, 과학기술적 혁명이 일자리를 줄이는가, 이 논란은 끝없이 이어져왔지만 그 동안은 줄어드는 일자리 수 비슷하게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듯 보이고, 골이 깊으면 산도 높듯이 큰불황은 대황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제 사회주의 중국까지 또 다른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그리고 세계 도처의 나라들이 이미 가계부채와 정부부채라는 거품 유효수요로 일자리를 만들어 오다가 글로벌 대불황을 맞은 이제, 가공할 위력을 가진 인공지능의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는 시절에는 기존의 어떠한 일자리 창출 공식도 소용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 문제를 ‘일’과 ‘자리’의 문제로 분리해서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도대체 만들어졌다가가 거품처럼 사라져 고통을 안겨주는 그 ‘일자리’에 ‘일’이 있었을까 ? 기업가들, 위정자들의 일자리에 일이 있었을까 ?

물론 일을 하고, 일이 있었다. 이 나라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만든 세대는 자랑스럽게 ‘우리는 일 밖에 한 일이 없다’고 한다. ‘한 손에 망치들고, 한 손에 총칼 들고’ 비장하게 밤낮없이 일하기도 했다. 그런 시절 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국가경영’의 책임자가 된 사람은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자처했다. 그래서 ‘일하지 않는 국회’를 비판하는 것이 어느 정도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삶의 수단인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경영과 월급쟁이 노동은 일인가 ? 당리당략과 개인적 권력욕에 물든 위정자들의 정치사무, ‘사심없이 열심히 한다’ 한들 국민적 삶의 수단인 국민총생산을 국가적 목적으로 추구하는 국가경영이 ‘일’인가 ? 그런 국가경영을 뒷받침하는 이론을 만들어내는 학자들의 일은 일인가 ? 우리 시대 전세계의 가장 중심적 공적 기관인 국제연합(UN)에서 최고 책임자를 맡아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하기도 하는데, 이건 일인가 ?

모두 일은 일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왜 이 모양으로 ‘말기’에 처했는가 ? 사람들이 일을 하되, ‘일다운 일’을 했는가 ? 이런 문제제기는 해 볼 수 있지만,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다. 사실은 노동, 노동가치설, 경영이론, 정치학, 국가사무·행정론 등이 있지만, 이들을 종합한 ‘일’은 개념 조차 없다시피하다. 그러니 일답지 않은 일, 일다운 일은 더더욱 논할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가 많을 때나 적을 때나 일‘자리’가 문제될 뿐, 일 자체를 문제삼은 적이 없고, 따라서 일다운 일을 할 수 있는 학문적, 교육적 인프라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거짓말같지만,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실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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