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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시공간, 인간의 사회역사성
작성자 달그림자
작성일 2016-05-05
   
경제의 시공간, 인간의 사회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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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글로벌 경제위기를 전후하여 존재론적 문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1930년대 위기와 사뭇 다른 양상이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는 한편에서 파시즘과 사회주의가 득세했지만, 시장기능을 인정하되, 그 구조적 결함을 보완하는 정부의 기능을 요구한 것이 주류였다.

최근에는 심리학·경제학에서도 경제주체로서의 ‘합리적 인간’을 부정하고, 인간의 불합리성을 전제하고 경제행동·현상을 설명하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라는 이름의 이론이 등장했다. 인간의 경제행위는 너무나 불합리하다, 예측가능할 정도로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마케팅 현장에서는 이런 이론을 응용해서 영업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 경제·세상이 언제 제대로 합리적일 때가 있었나 싶은데, 이런 이야기하는 수준이니, 인간의 불합리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런 주제는 아직 제대로 제기 조차 되지 않고 있다. 월가에서 ‘탐욕의 인간’을 규탄하는 흐름과 일맥상통하며, 탐욕의 인간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은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시장만능주의와 세계화의 결과로 다시 대불황이 닥치자, 오랜 신앙의 대상이던 ‘보이지 않는 손’이 과연 있으냐, 그건 왜 보이지 않는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닌가, 이런 문제제기도 기존 경제학의 밑뿌리를 뒤흔드는 존재론적 문제제기다. 앞서의 문제와 결합하면, 불합리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어떻게 사회적 질서를 확보할 것인가, 이런 사회철학적 문제가 된다.

  돌이켜 보면, 인간이 만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lble hand)’이란 개념을 신봉하면서 아마도 단 한 번도 그 ‘보이지 않는 손’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부터 존재했는지 물어 본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면서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든 나라에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고(한국에서는 강력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교과서는 ‘보이지 않는 손’과 ‘정부정책’을 함께 가르쳤다), 정부의 규제 없이도 잘 작동하는 이 ‘손’은 전세계에 존재하게 해야 한다고 강제된 것이 미국 중심의 세계화 체제였다. 원래 아담 스미쓰의 ‘보이지 않는 손’ 개념이 다분히 신학적 개념이었으니,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신( Invisible God)’이 전세계 모든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믿고, 강제하는 것과 흡사하다(실제로 미국에서는 시장근본주의자라 할만한 상당수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수요·공급법칙의 작동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창조주 유일신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오늘날 주류의 정통경제학에서 세세하게는 여전히 타당한 이론들이 있다. 그런데 하나의 ‘경제학 체계’를 보면 거대한 모순투성이다. 전후 미국의 ‘혼합자본주의’ 체제를 뒷받침한 ‘경제학원론’은 보이지 않는 손을 신봉하는 자유주의 경제학과 이것을 부정하며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반자유주의 경제학의 모순적 결합체였다(‘신고전파종합’으로 불렸으나 신고전파절충이라 비판받아왔다). 이후 신자유주의로 기울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이론체계에서는 체계적으로 시간과 공간, 사회와 역사 개념을 부정한 것이다. 사회 혹은 국민경제의 주요 과제로서 무엇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 생산할 것인가 세 가지로 한정하면서 언제, 어디서 생산할 것인가, 언제 어디서 생산해야 하는가, 이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여긴다. ‘시장’ 개념 또한 구체적 시장이 성립하는 토대인 토지·공간·사회를 전혀 문제삼지 않는, ‘공간 없는 시장’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여전히 공간있는 ‘재래시장’이 세계 도처에 남아있고, 재래시장이 아닌 ‘추상적 시장’이라 하더라도 생산하고, 실제로 사고 팔 수 있는 장소는 어느 나라에서나 토지이용 관련법, 도시계획법, 건축법, 도로교통법 등의 제도적 제한이 강력하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취업 등을 위한 불법 이민자 문제가 최대의 국가적 문제의 하나가 되어 왔고, 분단 한국에서는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역사적으로 변해 온 영토·영해라는 사회정치적 공간 경계선 내에서 일하는 것이 사활적 문제가 되어 왔다. 자유무역이 최고조에 달한 근래에도 국가간 실물 수출입이나 금융거래 또한 각국의 제도적, 행정적 허용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내에서도 규모가 큰 나라일수록 각 지역경제가 경제사정이 판이하고, 지역민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도 판이하다. 미국의 경우, 한국보다 규모가 큰 캘리포니아주 경제가 재정위기를 겪는다거나, 영국의 스코틀랜드가 영연방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 한국의 수도권 인구·경제력 집중, 영호남 경제불균형 문제 등은 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시공간 없는 시장·경제 개념을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안이하고, 태평스럽다.

  경제학원론을 넘어서 경제학 체계 전체를 보면, 시공간 없는 ‘경제이론’과 별개로 ‘경제사’가 있고, ‘공간없는 경제학’을 비판하는 지역경제학 등 경제의 공간성을 인정하고, 제도학파 등 경제의 사회성을 인정하는 분과 경제학에 의해 보완되고 있다. 말하자면 경제학 전체로서는 시공간, 사회역사성 없는 경제학과 시공간, 사회역사성이 있는 경제학이 서로 보완하며 자기모순적으로 공존하는 체계인 셈이다. 몇 갈래 비주류 경제학의 경우,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미있는 비판과 대안 제시가 있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새로운 출발점은 멀리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너와 나, 개별 경제 주체들이 초역사적인 존재도, 독자적, 원자론적 개인도 아니라, 특정 시대에, 가족, 그리고 가족 울타리 밖의 동시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나고, 그 관계 속에서만 겨우 하루 하루 살아가고, 다양한 자연적, 사회적 인과관계 속에서 이유로 죽는, 그런 사회역사적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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