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치열하지 않는 고요는 없다.
 Home  > 일 철학  > 본문
'만남'
작성자 ilhasa
작성일 2010-09-01 (수) 10:24
   
'만남'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google+로 보내기


 


"언제나 홀로 하고 스스로 떠난다"

이것은 언제나 화두이며 자기 소통기반이다. 내가 나를 만나지 못하는 데 누구를 만나겠는가? 내가 나를 쓰지 않고 소용하지 않는데 누가 같이 할 것인가? 매개가 뜻이고 드러나는 모습으론 일이고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곳에 일이 있다. 홀로 하게 되면 만남이 있게 되고 만나면 모인다, 보배구슬은 아무리 깊은 장롱 속에 숨겨놓아도 그 빛이 새어나오게 되어있다.

 

교육학 차원에서도, 서구 철학에서도 '만남과 열림' 말하지만 사실 만남이 없다. 만남이 동양의 사단론에서는 예(禮라 하고. 禮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법칙(法則)으로 끝난다. 우리가 통상 말하는 만남이란 것은 갈등과 충돌, 절충과 타협일 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바라밀은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것으로, 참고 견디는 것으로,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는 것으로, 고요히 머물러서 관찰하고 살피는 것으로 지혜를 발휘해서, 나와 모두에게 지혜를 던짐으로 해서 행하는 것이다. 세속의 방식에서도 지혜가 있으면 백두산 꼭대기에 있어도 찾아온다, 반드시,만나게 되어 있다. 내가 가서 꼭 만나야 되는 것은 아니다. 실력이 있으면 가만 있어도 만나게 되어있다, 세월이 흐르면 만나니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니까, 진정한 만남은 필연이다. 우연이 아니다. 우연의 만남은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좋은 만남, 나쁜 만남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실력이 없으면 자기 수준에 맞게 만나야 되는데 도무지 안 만난다. 그래서 ‘도깨비 굴에 들어앉았다’ 는 이야기를 한다, 이와 달리 정신없이 만나러 나가게 되면 외판원이 되거나 광신도가 돼버린다.

 

불교에서 팔정도를 이야기하고 육바라밀을 이야기한다, 길은 여덟 개를 이야기하고 만남은 6개를 말한다. 두 개가 비어있다. 그래서 그 하나를 ‘만행’으로 이야기한다. 저자 거리로 내 모는 것이다. 부딪치고 깨지면서 배우라는 것이다, 6바라밀이 시원치 않으니까 실력이 안되니까 무식한(?) 한 만남의 방법을 그렇게 가르친다, 최후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차제걸이(次第乞已)가 되면, 그런 정도로 실력이 갖추어지면 만행이라 하지 않고 유행(遊行)이라 한다. 유행과 만행은 완전히 다르다. 유행(遊行)은 존재와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필연의 궤적을 흘러가고 만행은 소통의 숨구멍을 찾아 마구 부딪치는 우연적 만남과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Copyrightⓒ(주)방하 All right reserved.

주소 : 서울 양천구 오목로 182 미덕빌딩 201호  1566-4995 / 대구 수성구 범어동 250-4번지 053-741-0576

W3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