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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존재의 세계화
작성자 ilhasa
작성일 2010-05-20 (목) 13:45
   
일, 존재의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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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일답게 못하면 자꾸 사람과 세상에 의지하려한다,

일 자체의 합리성으로 일을 굴려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지하는 아닌가,

세상에서 잘 받아주는가 아닌가

사람과 세상속에서 당위성을 찾게 된다,

그러니까 세속적인 다수와 세상의 인기에 영합하려 한다,

일이 일답지 못할 때, 그렇게 된다,

 

일은 일 그것으로 잉태되고 자기 생명성을 갖고 굴러가는 것이다.

여기서 감응이라는 의미가 아주 중요하다.

통상 마주한다고 하는데,

내가 나를 마주하는 순간에,

존재의 발견에서, 실존과 실재, 당위와 필연의 합치점을 고민하는데서

일이 생긴다.

그러나 세계의 발견은 존재의 발견에서 더 나가야 된다.

존재의 발견, 그리고 세계를 향한 고민에서 차서로 진입하는 거니까

존재의 발견은 차서(次序)이전이다,

세계에 대한 고민 없이 일로 진입하면 존재와 세계의 소통이 아니라

존재의 욕구로 변질된다,

 

‘방하(放下)’를

흔히 마음 비운다,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개체적 차원의 것으로, 존재적 차원의 것으로 이해하지만

존재를 세계 속에 내려놓는 것이다,

그러니까 ‘방하’는 존재적 고민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향한 고민을 끌어안는 것이다,

굳이 구원이라면 표현을 쓴다면

존재와 세계와의 소통, 소통을 향한 일에서 구원이 있는 것이니까

세계를 향한 고민, 그것이 열림인데,

그 고민은 불가피한 것이다,



감응(感應)은, 존재와 세계의 대화가 감응이다,

세계로부터 주어진다는 측면으로 보면

느껴지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고

내가 세계성을 발견한다는 발견한다는 측면으로 가면

세계성을 향해서 나를 던지는 것이 감응이다,

던지면 세계가 반응을 할거다,

틀리면 아무 반응이 없을 것이고 맞으면 반응이 있을 것이다.

 

일에 투철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되어서 보는 것이다.

일은 사람을 고민하거나 세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일 그 자체에서 자기 시기를 본다,

때를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일이, 정말 사람과 때를 어떻게 상응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는,

일이 완전히 사람이 되어서 본다,

지금이 때인가 아닌가를 보게 된다.

일에 담겨져 있는 사회성이

각인에게 어느 정도 자각이 되는지,

정신성이 있나 없나를 감지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런 생각이라도 하고 있나 없나를 알 수 있다. 있다,

그러면 충분히 성숙되었나 안되었나를 알고

성숙되면 일이 때가 된 거다.

 

일이 완전히 세상이 되면 때가 되었나 안 되었나를 알 수 있다.

세상에 서 이게 먹혀 들어가는가 안 들어가나,

요구가 있나 없나, 문화적으로 토대가 있는가 없는가 알 수 있다,

* 일철학에는 일자체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넘어서

상호연관의 문제로 가면 존재론 잉여론 경세론 품류론 과학론 문화론이 따라간다, 이점은 추후 검토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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