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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철학과 사사무애(事事無碍)
작성자 ilhasa
작성일 2010-03-14 (일) 09:41
   
일철학과 사사무애(事事無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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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바 있는데

존재 - 개별적 존재의 법칙이 있고
세계는 질서가 있다,

세계질서에 착안하여 그에 주안하면

객관적 관념론자(=본체론자)가 된다,

반면 개별 법칙이라는 부분, 현실에 너무 매몰되면

경험주의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세계는 인식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자, 허무주의자가 된다,

그래서 원리를 중시한다,

존재와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원리, 일의 원리를 중시한다,


 


원리를 실제적으로.

주체적 입장에서, 주체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경륜(經綸)이라고 한다,

그리고, 활용이라는 측면을 제거해 버리고

주체와 세계와의 연관이라 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경위(經緯)라고 그런다.

그 다음에 원리론적 측면에서

원리라는 이면을 빼버리고 현상적인 측면,

즉 일에 있는 현상만 떼어 놓고 보면 사리(事理)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세상과 일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측면에서는

도리道理가 되어버린다.

3

다시 이(理)무애, 사(事)무애,

이사(理事)무애, 사사(事事)무애라는 무애관(無碍觀)에서 본다면,,,,

그러면 이무애(理無碍)가 무언가?

존재의 법칙 - 존재의 구조기능적 차원의 법칙이

원리라는 개념과 연관하지 못하면 이(理)무애가 안된다.

존재와 세계의 교통이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존재와 세계를 소통시킬 방법,

존재의 세계화 - 세계의 존재화가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일,

일의 원리를 알 때, 이(理)무애가 된다,

존재의 법칙, 세계의 질서를 아는 것으로는 이무애는 불가능하다,


그 다음 사무애인데

존재에 대한 해명이 있고 ,

그리고 세계에 대한 해명이 있고

존재와 세계를 연결시키는 일,

일 자체에 대한 해명이 될때 사무애(事無碍)가 된다,

그리고 다시 이무애와 사무애가 연결이 되면서

직선으로 연결하든, 곱하기로 연결하든,

가감승제를 동원해서다 돌아간다.

그래서 존재의 법칙과 세계의 질서가 통일된 체계가 구성된다,

이것이 이사무애다,

그 다음, 체계가 자동성을 발휘하면서 사(事)가 굴러간다,

사사(事事)가, 일의 원리가 체계의 자동화(체계화)로 실현된다,

이것 체계화 즉 사사무애(事事無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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