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이 좋아지길 바란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바뀌고 변화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바뀌지 않고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또 바뀌지 않는 세상을 두고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한탄하기도 한다. ‘내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면 ‘나하나 달라진다고 세상이 달라지나?’라고 면박을 준다.

결국 나는 바뀌지 않고 세상이 내 욕심대로 바뀌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양 이대로 있고 세상은 우리의 욕망의 연장선상에서 있어주길 바라고 그렇게 세상이 바뀌어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희망이란 것들이 그렇다,

우리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는 천동설(天動說)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에서 천동설의 시대는 끝났지만 인간의 사회역사에서는 아직 천동설이 끝나지 않았다. 그 오랜 착각과 망상은 끝나지 않았다.

정치꾼들도 경제인들도 언론인들도 학자들도 사회운동가들도 부동산투기꾼들도 저마다 세상을 말한다. 그러나 정말 세상을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다들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나의 세상’을 말한다. 내 욕심으로 좌지우지할, 내 욕심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말한다. 사회를 말하지만 사회는 없다, 오직 아집과 아상의 투영물인 자아적 사회만 있다.

다들 내 욕심의 연장선상에서 ‘나의 세상’을 말할 뿐 세상의 사람으로서 ‘세상의 나’로서 살아갈 도리를 말하고 그 길을 간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

인간세상(=人世)은 세상사람(=世人)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 달리 누가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세상사람이 바뀌지 않는 데야 인간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발을 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세상이 왜 이래?’ ‘세상이 왜 이 모양이야’라고 한다. 정말 세상을 걱정하는 소리일까? 내가 사는 게 어렵고 무언가 힘들고 잘 풀리지 않을 때에 푸념하는 소리가 아닌가? 만약 내가 돈을 잘 벌고 잘 나가고 재미나게 살고 있다면, 세상이야 바로 가건 거꾸로 가든 관심이 있을까? 세상이 좋아지길 바라지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이지 세상에 대한 책무를 생각하고 내 자리를 지키면서 세상을 가꾼다는 그런 고민을 할까?

우리가 세상이 말을 쓰지만 우리는 ‘나의 세상’만을 이야기한다. 내가 필요한 것을 챙기는 세상, 내 욕심에 맞는 세상만을 이야기한다. 세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세상을 가꾸는 ‘‘세상의 나’라는 개념은 없다. 그러니 세상이 이 모양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돌보지 않고 가꾸지 않는 세상, 그 세상이 어떻게 좋아질 수 있고 거기에 무슨 희망이 있고 내일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 문명사적 혼돈기, 총체적 위기를 말한다. 세계사적 위기이고 인류사적 위기라도 해도 좋은데, 그 위기라는 것이 그렇다. 사실 역사에서 위기란 없다. 역사에는 희망이고 절망이고 그런 것은 없다. 역사는 언제나 제 갈 길을 갈뿐이다. 우리가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변화하는 역사 그러나 변화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위기일 뿐이다. 역사는 이미 근대를 넘어 저만큼 새로운 시대로 달리는데 인간은 기존의 삶의 방식을 고집한다는 것, 이대로 편하기를, 이대로 희망이 있기를 바란다는 것,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을 거부한다는 것, 그것에서 위기가 빚어질 뿐이다.

21세기 인류사의 최대의 숙제는 삶의 방식의 전환 이 문제일 것이다. ‘나의 세상’을 사는 방식이 아니라 ‘세상의 나’를 사는 방식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 ‘인간의 사회화’ 그 문제일 것이다. ‘사회적 자아’에로의 전환 그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