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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철학하여야 한다
작성자 dasi
작성일 2016-04-12 (화) 10:58
   
철학을 철학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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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주체가 누구이며, 철학하는 관점과 대상이 무엇인가는 완연히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기왕의 철학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지 못하다. 철학은 현실의 구체적인 실존이자 이르러야 할 이상이자 이념이다.

지금까지의 철학에 대하여 한마디로 요약 평가하자면, 인류의 철학사는 철학에 있어서의 큰 분과라 할 수 있는 존재론(存在論), 인식론(認識論), 가치론(價値論) 전 영역에 있어서의 독립성의 상실, 체계적 불비성(不備性), 불분명성, 과학성의 흠결, 내용상의 빈곤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철학에 있어서의 이러한 문제는 좁게는 한 개인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의 문제이며, 다른 각도에서는 사회관, 역사관, 생명관의 문제인 것이다. 이왕의 우리의 철학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명쾌하게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우리들의 것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분분한 논의와 논쟁의 연장선상에만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항변하는 중요한 단서인 것이다.

사회철학이라 할 때 거기에는 존재(인간), 인식(제도·사회), 가치(역사·문화)철학이 구비되어야 한다. 시절과 장소에 따라 어떠한 형태로든 거기에는 발전과 진보를 담보하는 것으로서의 사회철학이라는 것이 있어왔지만, 무엇이 철학적인가에 대한 의문에 철저히 답해주지는 못했었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이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인식 가능한 세계 안에는 인간과 인간의 사회 이상으로 복잡하고 난해한 존재와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존재에 대한 완전한 파악은 인간 사회라는 하나의 세계에 대한 완전한 파악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 존재는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존재(여기에서 물질적'이라는 말은 기존의 유물론적 철학적 세계관에 근거한 물질 개념과는 차이가 있음을 밝혀둔다.)이며, 시간 공간적인 일정한 제약(기본적으로 존재와 세계의 기본 구성요소에 부수하는 시공(時空) 개념에 근거함)을 부차적으로 수반하는 존재이다.

보다 고등적인 존재에 있어서 물질과 의식은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기존의 자연과학적인 철학적 개념에서는 모든 물질은 시간공간적인 일정한 제약 속에 존재한다고 하여 물질보다 시간공간을 우선적으로 두지만, 실은 존재가 있기 전에는 시간공간도 없는 것이다. 절대 시간에는 공간이 없고, 절대 공간에는 시간이 없듯이, 존재가 없으면 시간 · 공간도 없다. 따라서 존재가 있음으로 해서 시간공간이 있는 것이다.

관념론 철학에서는 세계는 의식의 집합체라 하지만, 거기서도 역시 시공간 밖에 존재하는 의식은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시간, 공간은 과연 무엇인가? 시공간은 의식이 아니라 하면 관념론 철학 자체의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유물론 철학에서도 물질 개념은 갖고 있는데 의식에 대한 개념 규정은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의식도 물질(기존 철학에서 말하는 물질이라는 개념과는 다르다.)로 규정한다. 이는 유물론 철학에서 물질은 형태나 상황이 달라진다 해도 그 물질성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물질과 의식

 

물질과 의식은 물질성이라는 개념으로 똑같은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의식을 이야기하기 전에 고대 철학에서 첫 문제점으로 제시했던 물질과 정신이라는 구도로 일단 돌아가서, 그 물질과 정신 사이에서 무엇이 통교될 수 있는가를 다시 고찰해야 된다. 그런 보다 진일보한 시각을 일단 확립해야 된다는 것이 <존재의 기본 구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또 다른 하나의 주제이다. 인간 존재(이하 존재라 약함)는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의식이라는 또 다른 물질계에 대한 해명이 기존의 철학적인 명제의 대부분을 충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보다 철학적인 사유와 검증의 결여로 인하여 진리의 세계에 그냥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인간 존재의 파악에 있어서 물질과 의식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적 설명 방식이나, 의식(감각) 또는 사고(관념)의 집합체라는 물질이 아닌 그 어떠한 것의 일원적 통일적 해석 방식에 반대한다. 즉 주관적 관념론이든 객관적 관념론이든, 관념론 철학 체계의 연장선상에서 의식이나 감각, 물질과 의식이 하나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실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도 물질이다. 현재의 자연과학적인 연구 성과로서는 이것이 물질이 아닐지 몰라도, 자연 과학도 하나의 허구이거나 미신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물질과 시간공간 등에 대한 그 스스로의 중요한 개념들에 대하여 언제나 그랬듯이, 끊임없이 계속하여서 그 스스로의 기반과 그에 대한 설명 방식을 바꾸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의 한계일 뿐 과학이 있기 이전에도 과학적인 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는 과학이 있음으로써 과학적인 것이 있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과학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본래 과학적인 것을 단지 실용적인 과학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자연과학의 물질, 시간, 공간 개념만 해도, 절대 시간을 이야기하다가 상대 시간을 말하고, 또 물질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원자 분자를 뛰어넘어서 이제 미립자, 소립자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때그때 해명되어지는 만큼 설명을 할 때마다 과학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지 않고, 언제나 자기가 연구한 과학적 성과가 확정적이고 세계의 궁극인 것처럼 이야기하기 때문에 냉혹하게 말하면 굉장히 무책임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과학적이라는 개념 또한 하나의 거대한 미신이다. 이 미신으로부터 자기의 사고가 해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그러한 물질의 보다 궁극의 근원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여기에서는 하지 말기로 하자.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에 들어가 버리면 밑도 끝도 없는 종교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까 여기에서는 섣불리 이런 문제로까지 바로 비약시켜서 들어가지는 말자. 철학적인 구체적 논의에서는 굳이 그 의미를 가지지 않는 문제이니까.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쓸모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가치론 체계에까지 연결되는 철학의 전반 체계에 있어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개별 주체에 있어서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인식론 영역까지는 완전한 의미를 가진다. 그걸 알아야 법칙이라든지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매듭을 찾을 수 있다. 실타래의 매듭을 쥐지 않고는 그 실타래 전체를 풀 수가 없으니 그 매듭을 제대로 찾는 의미에서는 알아야 된다. 그러므로 철학에 있어서 존재론 영역과 인식론 영역에서는 완전히 알아야 하고, 반면 현실적 유용성을 논하는 가치론 영역에서는 굳이 존재의 궁극의 실상이 무엇인가를 알아봐야 구현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다. 단지 거기에 합당한 존재의 실상을 구현하는 것만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간단하게 부언하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존재 및 세계는 궁극적으로 완전히 분해되고 없어진다. 이것이 수행 세계에서 이야기하는 공()이다. 그냥 공()이라 해서 단순하게 합리적으로 추론하거나 귀납적인 해석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되는가? 철학자 자신이 그러한 세계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경험적으로 증명하라. 그렇지 않고 가설적인 하나의 개념으로부터 그러한 실제적인 개념을 도출하지 말라. 그러한 철학 체계를 갖고 있는 철학자 자신이 명확하게 실증적으로 검증을 하라. 그렇게 했을 때 모든 물질과 존재, 그리고 이 세계는 궁극적으로 완전히 분해되고 없어진다. 그것을 수행 세계에서 공()이나 무()라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들은 이미 죽고 없어졌기 때문에 그 진실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지금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제 우리는 그 말에 끄달리지 말고 스스로 체득한 이야기를 하자. ‘체득해 보니 완전히 분해되고 실제로 없더라. 그러니 아마 그런 뜻으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렇게 용어 자체를 추론하는 것이지, ‘이라 했으니까 이럴 것이다.’ 그러면 이 철학 자체가 다 흐트러진다. 사유가 없는 철학은 있을 수가 없다. 입만 살아있는 강단 철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된다.

앞으로 인식론 체계 자체를 제대로 다듬기 위해서는 연구자 자신이 인식론 체계에 합당한 구체적인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게 아주 어려운 부분이다. 과연 이 세계의 실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자 자신이 그러한 인식론 체계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분명히 앞으로 철학은 철학 자체로 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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