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력은 귀에서 나온다

요즘 시절, 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극히 강조되는 바다. 그래서 ‘스피치 훈련’을 하고 말의 기술을 배운다. 만사를 입으로 해치우는 정치판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면접시험을 치는 취업생들도 입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그러나 귀의 중요성은 의외로 무시된다.

객관적 정세를 판단함에 있어서 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령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마주보면서 말을 듣지만, 말의 진실성 여부의 판단은 귀가 한다. 눈은 차라리 보조적인 역할만 한다. 그렇게 귀가 중요하다. 귀 때문에 흥망성패가 갈리고 운명이 갈리는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귀가 유난히 컸다. 귀가 밝았다는 이야기다. 사실 유비의 지도력은 특별한 것이 없다. 귀가 좋았다는 것, 즉 남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아는 덕성이 장비와 관운장과 같은 명장을 거느리고 제갈량과 같은 불세출의 참모를 옆에 둘 수 있었다. 귀가 여리거나 얇았다면, 간신들의 이간질이나 아첨 때문에 그런 명장과 참모가 남아날 수 없다,

제갈량이 끝까지 유비를 보필했던 것은 유비가 말귀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귀가 좋다는 것, 그만큼 중요한 덕성이다. 유비가 일세의 영웅호걸의 반열에 이름을 남긴 것은 귀의 덕성 때문이다. 유비는 입으로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귀로 정치를 했다. 그것이 유비의 미덕이다.

반면 귀 때문에 몰락한 군왕들도 수 없이 많다. 이를테면 <와신상담>의 주인공인 월나라의 구천과 오나라의 부차를 우리가 기억한다. 부차는 직언을 서슴지 않던 오자서를 멀리하고 언제나 자신의 덕을 칭송하고 추어주는 백비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자만에 빠지면서 구천을 놓아준다. 그것이 결정적 패착이었다. 결국 오나라는 망하고 자신도 목숨을 잃는다. 부차는 용맹성도 있고 또한 지략도 있었다, 그러나 귀가 여렸다. 귀 때문에 망한다.

그래서 예부터 아첨에 대해서는 예부터 거듭 거듭 경계하라고 하는 바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자기를 칭찬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듣고 자기를 비판하거나 불리한 말은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아첨에는 귀를 열고 진실에는 귀를 막기 때문이다.

우리의 귀가 그렇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것 같지만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다. 자기가 듣기 좋은 소리, 듣고 싶은 소리, 자기에게 필요한 소리에는 귀를 쫑긋하고 듣기 싫은 소리에는 귀를 닫는다. ‘양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만 진실은 귀에 거슬린다. 그렇게 우리는 진실에서 멀어지고 객관적 정세판단에 실패한다. 객관적 정세판단에 실패하고서도 성공할 수 있는 인생은 없다.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을 경륜할 수 있는 경세력(經世力)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귀에서 나온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세상에 넘쳐나지만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게 되어 있다. 말만 앞서고 입만 살아있는 시절에, 진실을 말해도 그 귀가 거슬리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우리 모두가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에 귀가 거슬리지 않는다면야 더 없이 좋겠지만 거슬림을 참을 수만 있다면, 최소한 참기 위한 노력이라도 포기 하지 않는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삶의 현장을 경영하는 엄청난 동력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