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연, 우리는 곧잘 인연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인연을 알까? 인연을 인연으로 받아들일까? 그리하여 인연에 당도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다, 인연을 모르고, 인연을 받지 않으려 하고 인연에 도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게 우리네 인생이다,

인연이란 것, 자기 삶의 좌표를 말해주는 것이고 또한 삶의 궤적을 이루는 것이다. 인연을 받지 못하고 인연에 당도하지 못한다는 것, 좌표 없는 인생, 궤적이 성립하지 않는 인생이란 이야기다, 살아도 살아도 자기 정체성이 없는 삶이란 이야기다,

2.

우리가 인연을 말하지만, 인연을 장난처럼, 인연을 갖고 장난을 친다, 제가 아쉬울 때는 친구를 찾고 친구가 아쉬우면 요리조리 피한다. 연인들이 좋아서 만날 때는 인연을 말하다가 수 틀리면 쉽게 서로를 팽개친다, 인연을 그렇게 헌신 버리듯이 내팽개친다, 우리들이 하는 짓꺼리 어느 하나 인연을 갖고 장난을 치지 않는게 없다, 공부를 하면 하는대로 그 공부를 갖고 장난을 치고 기술을 갖고 있으면 기술을 갖고 장난을 치고 돈이 있으면 돈을 갖고 장난을 친다,

도무지 인연을 받는다는 개념이 없다, 제 입맛에 따라서 제 기분에 따라서 제 이익에 따라서 자기 명리욕에 따라서 인연을 갖고 장난을 친다, 이것은 챙기고 저것은 버리고, 또 때로는 가까이 하고 때로는 멀리하고 갖가지로 장난을 친다,

우리 일상사 전반이 인연을 갖고 장난을 치지 않는게 없다. 무얼 먹을 때도 그렇다, 정말 고맙게 감사하게,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사하게 여긴 순간이 몇 번이나 있을까? 살아서 세상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 잡스런 이 인간이, 달리 살아있을 가치도 없는 이 인간이 이렇게 먹고 살 수 있게 주는 인연에 감사한 적이 몇 순간이나 있었을까?

우리는 심심해서 먹고 재미로 또 맛으로 고기를 구워서 먹는다, 산천에 연기가 가득할 정도로 배터지게 구워먹는다, 옷을 입어도 신발을 신어도 명품을 찾는다, 인간구실은 못하면서 명품을 찾는다, 그리고 생일이다 뭐다 해서 꽃을 선물로 주고 받는다, 꽃다운 인생을 산 것도 아니면서 꽃다운 인연을 가꾸는 것도 아니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간사한 인연 그걸 꽃을 갖고 장난을 친다,

더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우리는 인연에 대한 개념이 없다, 인연을 입에 담을 처지가 못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뜻(意)이 없다, 인연에 무지하다면, 인연을 받고 인연에 당도하지 않으면 뜻이란게 있을 수 없다, 좌표도 없고 궤적이 성립하지 않는 인생에는 뜻이 있을 수 없다,

3.

우리들이 크게 착각하는게 있다, ‘나’를 중심에 놓고 인연을 부차적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임의로, 편의적으로 인연을 관리하고 조작하고 조정해 좋은 걸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보통문제가 아니다, 인연이 나에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인연의 산물이란 것, 나는 인연의 자식이란 거, 그런 개념이 없다는 거다, 그러니까 나와 인연, 이것을 완전히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다, 착각이다,

이런 착각속에서 인연이란 개념이 있을 수가 없다, 나의 인연이 아니라 인연의 나라는 개념으로 전환할 때, 인연이란 개념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나’라는 놈은, 밤만 되면 세상모르고 잔다, 그러나 한순간도 쉬지 않고 피가 돌고 숨을 쉰다, 그리고 우리가 알든 모르든 세포는 생멸을 한다. 우리가 ‘나’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왜 피는 죽을 때까지 돌고 도는 것일까? 오장육부는 알아서 움직이고 허파는 숨은 쉬는 것일까? 그것들의 인연은 또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내생명이라고 하지만, 생명이란 것은 나와 상관이 없는, 내가 만든 것도 내가 개입할수도 없는, 인연의 합성물이다, 지수화풍사대의 합성물이든, 육기의 합성물이든, 그리고 지수화풍이라하든, 육기라 하든 그또한 그 무엇의 근본이 있어서 그에 인연한 것들이다,

그러고 보면, 나라는 것은 다 된밥에 숟가락 얹는, 꼽사리 같은 것이다, 이 꼽사리가 인연을 갖고 장난을 친다, 무어가 무어 무서울 줄 모르고,

그래서 우리는 인연 없는 중생, 인연과 끝이 닿지 않는 중생으로 살다 마감한다, 인연에 끊이 닿으면 죽을 때를 안다, 이생에 뜻이 다했음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살아야 한다고 발버동친다, ‘내가 왜 죽어’라고 생떼를 쓴다, 인연과 따로 놀아서 인연의 뜻을 모르니까, 그래서 뭐가 끌려가듯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