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로 얼마전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강의를 요청이 와서 강의 시작 10분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느 분이 불쑥 말을 건넨다,

‘교수님, 뭐 하나 물어봅시다, 국사학계가 왜 그렇게 좌편향적입니까?’ 필자는 말문이 막혔다,

질문을 하신 분은 50대의 중산층, 전문직 종사자인데 최근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 분 자신이 그런다. ‘국사교과서’를 본 적도 없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좌편형적인지 그런 사실관계는 모른다고 스스로 말씀을 하신다, 그러니 답답하고 갑갑하고...자리를 피할 수만 있다면 그냥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필자는 겨우 말머리를 찾았다, 그래서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 국사학계가 좌편향적이라는 것은 너무 모르시는 말씀이라고, 사실은 국사학계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좌편향적이면 대학원 입학부터가 어렵고, 또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도 용납되지 않고 또 교수가 될 수가 없다고,

그 분이 다시 묻는다, 서울대나 연고대도 그러냐고. 그래서 필자는 그렇다고, 그 대학의 국사학 전공자 중에서 좌편향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런 정도 이야기만 하고 강의를 시작하는대 영 찜찜했다, 이런 자리에서 인문학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이 아니라 색깔을 앞세우는 자리에서, 그것도 색깔을 가르는 기준도 없이 막무가내로 색깔을 들고나오는데야 ‘인문(人文)’을 이야기하러 나온 필자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는 분들이 다 그분의 입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2.

한국 사회는 지난 시절에도 틈만 나면 색깔론이 등장했다, 그런데 색깔을 가르는 기발하고 희한한 기준이 있었다,

‘김일성이가 이승만을 욕한다, 고로 이승만을 욕하면 김일성과 같은 놈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친일파 처단을 주장한다, 고로 친일파 처단을 주장하면 공산주의다’

정말 색깔이라도 제대로 보고 색깔을 가르면 좋은데 색깔도 보지 않고 색깔을 가르는 이 기발한 기준은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색맹의 색깔구분법이라고나 할까?

한국사회에서만 통하는 독특한, 창조적인(?) 색깔 이름이 있다, 국방색 (國防色)이 그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국방색이란 색깔을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육군의 군복 빛깔과 같은 카키색이나 어두운 녹갈색을 그렇게 지칭했다.(지금은 군복색이 바뀌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