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는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은 세포들이 있고 그 어느 세포도 같은 것이 없다.
세포들간에는 빈틈없는 신호전달체계, 소통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생명이란 것 자체가 거대한 소통체계인 셈이다.
소통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병드는 것이고 소통체계가 불통이 되면 죽는다.

사회적 소통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생명력과 통합성은 구성원간의 소통의 수준에서 결정된다.
사회적 소통이 마비되면 그 사회는 병들고 죽어간다.
요컨대 소통(疏通)과 불통(不通)의 차이는 삶과 죽음으로 대비될 수 있다.

과거 어느 때에도 소통의 중요성이 이 시절처럼 강조된 적은 없었다.
여기에 기묘한 역설이 있다.
빛의 속도로 정보를 전파할 수 있는 인터넷이 집집마다 깔려있고
손바닥에는 지구 반대편과 통화할 수 있는 이동통신 수단을 쥐고 산다.
그렇게 소통수단과 도구는 첨단으로 발달했지만
정작 소통의 부족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왜 그럴까?

소통(communication)은 의사전달과 교환의 행위로 정의된다.
여기에는 상호성과 등가성 그리고 동시성의 세 가지 법칙이 있다.

첫째, 상호성의 법칙이다. 소통은 상호적이고 쌍방향적인 것이다,
수돗물을 공급하듯 일방향적인 것에서는 소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광고 선전 선동, 그리고 홍보라는 것들은
상대를 포섭, 세뇌, 정벌하려는 것이 목적이며 상대를 설득하려할 뿐
스스로 설득당할 여지를 갖고 있지 않다.
상대를 설득하려하는 만큼 스스로 설득당할 여지를 갖고 있을 때,
그런 상호성이 있을 때, 서로가 통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자기중심적인 세계를 부정할 수 있는 만큼,
탈중심화의 반경만큼 소통이 가능하다.

둘째, 등가성의 법칙이다.
‘나’와 ‘너’가 동등한 지평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너’를 얼마나 자기화할 수 있느냐,
‘너’를 나의 또 다른 ‘나’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들의 경우, 나는 나, 너는 너를 고집한다면
각자가 만져본 것만 고집할 것이다.
그러면 각자가 그리는 코끼리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만진 것을 자기가 만진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코끼리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며 제 삼의 결론으로 진전할 것이다.,
이것이 소통이다.

흔히 ‘열림’을 말하지만, 열림이란 것은, 상대방을 얼마나 자기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거기에서만 자기부정이 가능하다.
힘의 우위나 지적 우위를 앞세우는 권혁과 헤게모니의 세계,
약육강식의 질서에서는 소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셋째, 동시성의 법칙이다. 소통은 송신과 수신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여기에 시차가 생기면, 그 시차로 인해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다.
같은 정보라도 시간을 놓치면 그것은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지고
그것이 소통의 장벽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통의 법칙에 충실한 인간형이란 대단히 도덕적인 인간형이다.
형식적 도덕 규범에 충실한 도덕적 인간이 아니라
동태적인 관계의 정합성을 지켜갈 수 있는
그런 의미의 도덕적 인간을 의미한다.
간명하게 일방주의적 야만, 지배와 정벌의 야만을 포기한 인간형을 의미한다.
그 야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소통은 없다. 그렇게 보면, 소통의 발달이란 것,
사실 인간발달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