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네 기둥

<중용>에서는 공부의 네 기둥을 박학(博學), 심문(審問), 명변(明辨), 신사(愼思)로 말한다, 이에 대해서 동무 이제마는 <격치고(格致藁)>에서 상당한 자료를 남기고 있는데 그를 좀 풀어서 정리해보자.(* <경세학교>의 [격치고 강좌] 참조)

(1) 박학(博學) :

박학은 널리 배운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지식 정보를 널리 습득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 자신의 좁은 식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주관의 편협성을 탈피하기 위해서 널리 배워야 한다. 그러나 배움의 목적은 사심(私心)을 떨치는데 있다. 사심을 떨치기 위해서 널리 배워야 한다. 

왜 사심을 떨쳐야 한다고 말하는가? 사리사욕을 그대로 끌어안고 사심(私心)을 끌어안고는 객관의 이치, 객관의 진실에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배움은 목적은 무엇일까? 남보다 좀 더 배워서 좀 더 많이 알아서 그것을 밑천삼아 남을 이기고 남의 머리위에 서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심을 떨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심을 충족하고자 배운다. 그렇게 배우니까 아무리 널리 배운들 주관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을 더욱 무장하는 것 밖에 안된다,  

동무는 말한다. 사심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심을 떨치기 위해서 널리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점 우리가 분명히 새길 필요가 있다. 배움에 대한 우리의 뜻과 문제의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심으로 하는 공부라면 제 아무리 널리 배운들, 박학(博學)은 죽어있는 공부일 뿐이고 그 공부는 희론일 뿐이다. 

(2) 심문(審問)

심문은 깊이 따져 묻는 것이다. 학문(學問)은 학(學)과 문(問)의 합성어이다. 배움이 없는 물음, 물음이 없는 배움은 어느 것도 성립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물음이 있기 때문에 배울 것이다. 그리고 배우는 바로부터 다시 묻게 될 것이다. 배음을 자기화하는데 그만한 물음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움이 없는 물음, 물음이 없는 배움은 죽은 공부다.  

우리가 같은 책을 봐도 그렇다. 자신의 물음, 그 물음의 깊이만큼 배운다. 같은 책이라도 그냥 책을 보았다면 보나마나할 것이고 정말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졌다면 철저히 배울 것이다. 배움은 선험적인 것을 배우는 것이다. 앞서간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며 물음은 그 배움을 자기화하는 것이다. 

물음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가? 방심(放心)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대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음의 중요성이 있다, 심문(審問) - 깊이 따져 물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옳은 것으로 믿고 있는 그것에 다시 한번 물음을 던지는 것, 철저하게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방심(放心)을 구제하는 것이 심문(審問)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신사(愼思)

신사는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처신과 행동거지에 대한 성찰적 사고를 말한다. 사람의 도리에 합당한 처신인지, 정의로운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간명하게 말하면 할 짓을 안했는지, 하지 말아야할 짓을 했는지, 엄중하게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모자람과 부끄러워할 바를 돌아보고 바로 잡기 위해서 신사(愼思)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신사(愼思)는 게으름을 떨치고자 하는 것이다. 마음만 앞서고 몸이 따라가지 않는 것도 게으름이고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도 게으름이다. 또 자신을 무능하게 만드는 것도 게으름이고 불의(不義)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도 게으름 때문이다. 분명히 해야하지만 몸의 안일을 구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게으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머물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 틈만 나면 안일을 구한다. 안일을 구해서 게으름에 빠진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안일에 빠져 있다는 반증이고 게으르다는 반증이다. 더 나아갈 생각도 없고 자신을 고칠 필요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사(愼思)를 말하는 것이다. 무엇이 부족한가, 혹시라도 어딘가 문제가 없는가, 부끄러워할 바가 없는가, 빠트린 것이라도 없는가, 이것들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이것이 신사(愼思)의 의미다.

(4) 명변(明辨) :

명변은 사리를 분명하게 따지는 것이다. 사리에 어둡다면 사리를 벗어나서 자신의 욕심에 춤추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명변을 강조한다.  

예를들면, 어떤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서, 뿌린 대로 거두는 이치에 합당한 것인지 아니면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욕심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또 세상의 이익에 합당한 이익을 추구하는지 세상의 이익을 훔치는 것인지, 분명하게 따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욕심애 빠지지 않고 근면하게 살기 위해서 명변(明辨)을 말하는 것이다. 근면하다는 것은, 그냥 부지런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일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대동의 이익에 합당할 때, 그리고 생명을 지키고 사람을 살리는 보생활인(保生活人)의 정신에 합당할 때, 그런 진실한 생산성이 있을 때 근면함을 말할 수 있다.  

이상에서 간단히 살폈지만 고전에 말하는 공부는 우리의 공부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사심을 떨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심을 채우기 위해서 공부한다.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채우고자 공부한다. 또한 합리적인 가치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공부한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빙공영사(憑公營私)의 꼼수와 편법만 는다. 공부를 할수록 인간이 더욱 이상해진다. 공부 같지 않은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