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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 제 자리에서 우뚝하게 서는 것, 그것이 산림(山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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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못하는 병
작성자 한생각
작성일 2016-09-22 (목) 12:03
   
쉬지 못하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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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쉬지 못한다. 쉴 줄 모른다. 쉬는 시간이 되어도 쉴줄 모르고 쉬는 날이 되어도 쉴 줄 모르고 정년을 해도 쉴 줄 모르고,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 시간에 쉴 줄 모른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쉬지 못한다. 혼자 있어도 쉬지 못한다. 직장에서야 조직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하니까 그렇다 치고, 혼자 있는 시간에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참으로 낯설다, 남의 눈치를 보고 움직이고 남의 평가에 민감하게 움직이고 조직논리에 따라 잽싸게 처신하는 것에는 참으로 익숙한데,,,

정작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외부의 간섭도 강제도 없는 그 시간에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참 낯설다, 견디기 어렵다, 뒤집어 말하면 진실한 나를 마주하지 못한다는 것, 그게 어색하고 낯설다는 것, 그만큼 허위의식에 분주하다는 거다, 허위의식에 바쁘다는 거다, 바쁘게 만들어야 하고 바쁜 척이라도 하면서 를 피하고자 한다.

그래서 영화라도 보거나 tv를 보거나 인터넷에 다시 자신을 동여매어야 한다. 아니면 술이라도 마시거나 치킨이라도 먹거나 하면서 잡생각으로 망상으로 빠져 들어가야 한다. 곱게 자신과 마주하지 못한다, ‘의 숨바꼭질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쉬지를 못한다,

 

2.

쉰다는 것, 달리 말하면 그만둔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짓을 그만두어야 쉴 수 있는데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a) 내 생각, 내 주장이란 것이 늘 남들과 맞선다. 그리고 상대를 이겨야 한다, 지고서는 못 산다. 무슨 큰 생각, 큰 주장도 아니다. 어디서 얻어들은 지식과 정보의 파편 한 쪼가리, 자신도 어디선가 얻어들은 것 그것을 자기주장처럼 내세운다. 그래서 그것과 다른 소리를 들으면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주장, 내 생각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하찮은 것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를 싸구려로 팔아먹는다는 것을 모른다, 하찮고 잡스런 생각들의 주체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짓을 그만두지 않는다, 입에 거품을 물고 성질을 내고,,,그걸 소신(?)처럼 평생을 산다. ‘도 없고 내 생각도 없는 그 짓을 하면서 내가 산다고 생각한다,

b) 어느 순간 돌아보면 우리 자신이 가케무샤(影武者)와 같다. 가케무샤야 대가를 받고 청탁을 받고 연기를 하는 거지만, 우리는 대가도 없이 누가 시키는 자도 없는 데 스스로 그짓을 한다, 이를테면 특정 언론의 논설을 앵무새처럼 떠들면서 그걸 자기 신념처럼 내세우는 자들이 그렇다. 사실 내가 없는데,,,내 생각도 없고 내 주장도 없고, 그냥 그림자 인생인데....그걸 라고 확신한다, 직장에서도 가케무샤, 집에서도 가케무샤(가장은 이런 거야 라는), 혼자 있을 때조차도 그 가면을 내려 놓지 못한다. 그걸 내려놓으면 죽는 줄 안다, 가짜를 죽이는 건데 내가 죽는 줄 안다.

c) 우리가 남 앞에 설 때, 남들과 만날 때,,,언제나 남들이 나를 이렇게 보아주었으면 하는 모습을 상정하고 있다. ‘똑똑하게’ ‘예쁘게’ ‘단정하게’ ‘멋있게등의 모습()을 상정하고 있다. 그것을 상정하고 머리를 하고 옷을 가려입고 화장을 한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그러한 상()에 빠져서 우리는 산다, 그거야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인데,,,그걸 자기와 동일시한다. 언제나 자기와 괴리되어 있는 상(), 그 상을 끌어안고 산다. 그 허상의 배역을 아무리 열심히 한들,,, 가케무샤에게는 자기 인생이 없다. ‘자기가 없다.

d) 우리가 남들을 볼 때도, ‘대단하다’ ‘잘 났다’ ‘똑똑하다등으로 보고 평가한다. 그와 달리 진통치 않다’ ‘못 생겼다등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신의 허상이 투영되어 이다, 자기가 보이고 싶은 상()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러니까 상대방을 볼 때도 사람을 보는게 아니라,,, ()을 보는 것이다, 자기가 보이고 싶어하는 그 상()을 보는 것이다, 달리 보이고 싶지 않은, 싫어하는 상()을 보는 것이다, 결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쉽게 비유하면 그 사람의 몸을 보지 못하고 옷만 본다는 이야기다,

e) 쉴 수 없는 게 욕심이다, 쉬지 않는게 욕심이다, 이걸 먹으면 저걸 먹고 싶고, 그리고 딴짓하고 싶고, 갖가지 욕심들,,, 길을 가다가도 지하철을 타고서도 집에 가서도 쉬지 않는게 욕심이다, 갖가지 잡다한 욕심들,,,, 그욕심들 속으로 우리는 를 팔아치운다. 욕심과 나를 동일시한다, 권력욕, 명예욕, 자리욕심, 물욕, 애욕 등으로, ‘욕심의 성취나의 성취로 안다, 말릴 수 없는 욕심, 그래서 쉴 수 없다,

f) 또 이런 것도 있다. 스스로가 만든 계율 때문에 그게 족쇄가 되어 쉬지 못하는 병도 있다, 이를테면 선()과 선행에 대한 욕심이다. 선한 거야 좋고 선행도 좋고 착한 거야 좋지만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선과 선행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것,(또 남에게 강요하는 것) 그래서 늘 여기에 구속되어 사는 것, 이것도 지독한 병이다,

예를 들면, 선행을 하고 봉사를 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는데, 자기 장단으로 자기 의지대로 그렇게 착실히 전진하면 무리가 없다. 그러나 슈바이처가 되자고 하면 거기에 무리가 생긴다,

(그렇게 될 수 없다, 나는 나고 슈바이처는 슈바이처이니까)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그게 깊은 콤플렉스로 자리잡고 자신을 자학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혹사한다, 쉴 수가 없다, 쉰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악이 된다, 그러니 이것도 지독한 병이 된다, 또한 자기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남에게 그걸 강요하는 것, 이거 또한 지독한 병이다, (부모 자식간에도 이런 경우 적지 않다, 자기가 공부를 못하니까 공부에 한이 되니까 자식의 공부에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경우도 그 중의 하나다)


그만둔다( 이를테면 가케무샤를 그만둔다)는 지점에서 쉴 수 있고, 그만두면 쉰다는 개념이 좀 분명해지고 그러면 로 돌아온다는 느낌이 자리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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