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내 삶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Home  > 한생각  > 본문
무명(2) :- 고(苦)를 알지 못하고...
작성자 한생각
작성일 2016-05-13 (금) 15:36
   
무명(2) :- 고(苦)를 알지 못하고...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google+로 보내기

무명(1)에 이어간다.
<잡아함경>에서 (5)不知苦不知集不知滅不知道라고 하고 잇다

고를 알지 못하는 것, 집을 알지 못하는 것, 멸을 알지 못하는 것, 도를 알지 못하는 것 이른바 사제법문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라는 것이다,


(a)()는 현상이다, 현상이 고()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우리가 사는 게 그렇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앞도 뒤도 없이 산다, 그저 욕망을 쫒아서, 집착하는 바에 따라서 산다. 거기에 열중한다, 그걸 열심히 산다고 생각한다,

욕망, 애욕을 추구하고 그것을 채우는는 것을 낙()으로 삼다, 보람으로 안다. 그걸 자기실현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라는 개념이 없다. 권력을 추구하고 재물을 추구하고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고()가 아니라 낙이다. 그렇게 재미있고 즐겁다, 단지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고 고통스러울 뿐이지...그래서 욕망과 애욕에 끌려다니는 자신이 비참하다는 생각이 없다. 그게 고()라는 생각이 없다. 쩐만 있으면 이 보다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여기서 떠날 생각도 없다. 비유하자면 놀음꾼들이 도박판을 떠나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도박에 빠진 자신이 비참하다는 생각이 없으니까. 대박만 나면 세상에 전부 자기꺼라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의 행복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b)()을 알지 못한다는 것. 현상의 원인 고통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애욕과 욕망과 집착이 고통의 원인이란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애욕과 집착, 욕망을 삶의 동력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을 채우는 것이 인생으로 알고 있는데, 고라는 개념이 없는데, 집제를 알 수 없다, 알 생각도 없다. 그러니 그것을 제거하는, 애욕과 탐욕과 집착을 제거하는 멸제, 그것으로 떨쳐나는 구체적 방법론, 실천적 삶의 자세인 도제는 먼 이야기이다.


(6) 不知因不知因所起法

인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며, 원인을 일으키는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다,

 

앞서 업보(業報)를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와는 조금 다르게 을 말하고 있다.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 원인을 일으키는 요인, 원인을 일으키는 법을 알지 못하는 것, 이게 무명이다, 인과 원인 결과를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라고 하고 있다.

원인 결과, 인과관계를 알면 도덕은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과에 무지하니까, 그 상관관계를 모르니까, 결과에 눈이 팔린다. 그래서 협잡이든 뭐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사기를 치고 꼼수를 쓰면서 목전의 이익만 챙긴다. 그러니까 타락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도리고 사리고 다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나만 그러냐, 세상이 다 그런데,,,’ 그래서 파멸의 시너지 승수효과를 가져온다.

그 난장판에, 인과를 갖고 장난치는 전문가(?) 사기꾼들이 판친다. 아전인수격으로, 갑질의 노예가 되어 인과를 비트는 자들, 그래서 재미(?)를 보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비틀린 인과의 해석에 세뇌당하고 조종당하는 참담한 을()이 있고,,,

종교인들도 인과에 어둡다, 아전인수격이다. 가령 기도를 해서 병이 나았다, 그러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총이라고 한다. 그런데 병이 들었다, 주님 때문에 병 들었다고 하지 않는다, 자식이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면 은총이라고 한다. 그런데 입학시험에 떨어졌다, 주님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일일이 사례를 들어말하기 어렵지만, 우리들은 인과에 어둡다. 인과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 저한테 유리하게, 잘못은 남에게, ()은 내개로 과()는 남에게로 돌리는 해석을 한다. 인과를 말할 수 없는 아집, 애욕, 사견(邪見)이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인과를 말할수록 더욱 기괴한 놀음박에 나올 게 없다.

인과를 말하려면 자기 객관화,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법()이란 개념 실정법이 아니고 자연법의 개념이 시야에 들어올 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고()의 개념도 없는 현상계에서는, 욕망의 충족만이 목적이 되는 현상에 매몰되어 있는데야 법이란 개념 시야에 들어올 수가 없다,

 
 

Copyrightⓒ(주)방하 All right reserved.

주소 : 서울 양천구 오목로 182 미덕빌딩 201호  1566-4995 / 대구 수성구 범어동 250-4번지 053-741-0576

W3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