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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과 ‘명석판명’
작성자 한생각
작성일 2016-03-04 (금) 15:05
   
‘무명(無明)’과 ‘명석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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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명석판명

 

a) 서양근대철학의 기점은 , ‘라는 말뚝을 박고 시작한다. ‘에서 시작한다. ‘에 대한 의심은 없다, 명석판명(clear & distinct)것으로 받아들인다, 개인주의 사조의 바탕이다,

b)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는 다른 어떤 것을 다 의심해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이건 분명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있다’. 그렇게 된 거다. 생각하고 있는 거, 이게 라는 거다.

데카르트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주관적인 것(=진리에 이를 수 없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라는 것이 주관적(또는 어리석은) 생각을 지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어리석은 생각이 라는 허상을 만든 것일까?

서양철학은 전자다. ‘라는 것은 실체가 있는 것이고 그러나 나와 세계는 합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 생각은 주관적이다, 그렇게 된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내가 있고 나의 주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생각 = 무명이란 것이 라는 허상을 만든다는 거다, 세계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무명에서 대승의 세계가 무너지고 라는 허상이 생긴다는 거다, ‘는 무명의 산물이다,

c) 불가에서는 는 무명의 산물이다, 이 장벽을 넘지 못한 인간역사는 무명의 역사일 뿐이다. 여기에 발전이고 진보라는 것은 없다. 그러나 서양철학은 를 믿는다. ‘명석판명한 생각을 하고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근대의 종말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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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a) 데카르트 <방법서설>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참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참으로 인정하지 말 것

이 대목이 문제다, 그러면 결국 참이냐 거짓이냐를 판단하는 것은 , 참이냐 거짓이냐, 진리냐 아니냐는 에 달린 것이다의 주관성을 탈피할 수 없다.

참과 거짓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는 참인가? 이게 먼저 물어져야 한다 ‘‘내가 진짜라야 참과 거짓의 판단이 진짜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라고 믿는 이게 가짜라면 그 판단 그 생각은 가짜다그러면 라는 것이 진짜인지가 먼저 검증이 되어야하는 건데 그러나 데카르트는 거기에 대한 검증은 없다,

내가 참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참으로 인정하지 말 것,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독단론으로 갈 수 있다주관성을 떨칠 수 없다, 자기중심성을 벗어날 수 없다,서구철학에서 그렇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도 이 주관성을 탈출하지 못한다,

b) 데카르트는 명석판명을 늘 강조했는데,,, 실제 그의 생각은 이리저리 눈치를 많이 보고 있었다. 기회주의적이도 하다, <도덕 규칙>에 나오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 내 나라의 법률과 관습에 복종하고 신의 은총으로부터 배운 종교를 확고하게 견지하며 

도덕적 판단이란 거는 인간의 양심에 의한 판단인데, 여기서는 그런 거와는 거리가 멀다, 복종과 견지를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는 사상은 그 시대의 윤리, 자기 시대의 관습과 법률,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생각은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는 내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분별있는 사람들이 보통 실생활에서 갖고 있는 가장 온건하고 극단에서 먼 의견에 따라 내 자신을 이끌어간다는 것이었다...가장 분별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내 판단, 내 양심, 내 생각은 어디로 가고 자신의 양식에 의한 판단은 없고 가장 분별력이 있는 자, 가장 똑똑한 자를 따라야 한다고 한다,(follow) 그걸 도덕규칙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도 없다는 이야기다,

* 페르시아 사람들이나 중국 사람들 사이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마 분별있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역시 내가 함께 살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 나를 다스리는 것이 가장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따른다는 것, 도덕은 내 나라를 넘어설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도덕을 자기중심적인 개념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무엇이 사람의 도리로서 보편적인가를 따지는게 아니라 내 나라 사람들을 따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따른다는 거는 도덕적 판단이 아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그걸 데카르트는 도덕규칙으로 이야기한다,

데카르트도 그렇고 서양근대철학도 그렇지만 이성, 인간적 양식(good sense)에 의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국경도 넘지 못한다, 인간 이성은 똑 같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중국에도 분별력이 있고 페르샤에도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렇게 해 놓고는,,,, 그러나 나는 내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따른다고 한다, 이게 근대이성의 현주소라는 거다, 오늘날의 세계화라는 것도 그렇다, 말은 세계화,,,그러나 서구중심적 세계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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