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이 있는 죽음, 죽음의 설게

인생 5학년이면 죽음이란 걸 생각해야 한다, 어느 순간에, 언제 어느 때든, 지금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삶과 죽음이란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삶의 내용성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막가파식의 삶에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정작 떠날 시간에 못다한 미련과 회한을 남기기 때문에, 그래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

죽음이라는 건, 이별 중에서도 가장 황량한 이별이다. 아무 것도 건질 수 없는 이별이다. 세속의 이별은 그게 재물이든, 사랑이든, 사람이든 상대적인 이별일 뿐이다, 죽음은 의도하든 아니든 출세간이다. 이 세상과의 결별이다, 세상 너머의 이야기다,

죽음은 상대성이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이별이다. 늘 내가 이렇게 감각하고 했던, 자신이 사고하고 의식하고 감각하는 육체와의 분리다. 육체의 이별, 영육의 이별이다.

남들과 이별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것이다, 가슴이 뻥 뚫리든 세상이 아득하든지 그거는 차라리 쉬운 거다, 그런데 죽음은 남도 아니고 내가 날 떠나보내야 되는, 떠나보낸 다기보다 내가 나를 떠나가야 하는 거다, 몸은 여기에 두고 나는 어딘가 가야 되니까. 의식한다는 이 의식하는 작용의 나, 그거를 영성이라고 하든 정신세계라 하든 간에, 그것은 어딘가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야 하니까, 이 세계에서 할 역할은 끝났다는 거니까. 이 몸을 버리고 가야 된다. 내 몸을 버리고 나는 가야 된다. 나를 버리고 나는 가야된다, 이 일을 어떻게 맞이할 건가. 이게 죽음이다. 죽음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나 자신과의 이별이다.

언제든 내가 나를 미련 없이 떠나갈 수 있나?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소유, 탐욕, 집착에 허덕인다, 그러나 끝내 무엇하나 소유하지 못하고 가져가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 물론 재물도 다 놓고 가야하지만 자기 자신을 버리고 가야 한다. 내 몸뚱이도 버리고 가야 한다.

죽음의 준비, 이별을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는 늘 만남을 연습해왔다. 그러나 인생 5학년이면 만남이 아니라 떠나보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슬슬 갈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언제든 간다. 지금이라도 갈 수 있다. 갈 준비가 되었느냐? 아직 덜 되었느냐? 뭐 이런 것을 체크 해야 한다. 그냥 단순히 갈 것이냐?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 역할을 계승하고 갈 것이냐? 잘 검토가, 다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준비가 되지 않고 갈려고 하면 굉장히 당황스럽고 회한이 많다. 갑자기 가야하니까 이것저것 유언도 많고 할 게 많죠. 갑자기 바쁘다. 그렇게 허둥대면서 저승길로 가서는 저승길도 편하지 못하다. 참 안타까운 면이 있다.

어쨌든 죽음이라는 것은 큰 숙제다.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 매뉴얼을 따라 진행되는 죽음, 매뉴얼이 있는 죽음이 최고의 죽음이다. 보통 우리 세속적 죽음이라는 것은 매뉴얼이 없다. 원치 않는 죽음이다.

진짜 아름다운 죽음, 멋있는 죽음, 죽음이 아닌 죽음, 영원히 사는 죽음은 매뉴얼이 있고 프로세스가 있는 죽음이다. 매뉴얼이 있는 죽음, 우리는 스스로가 그런 죽음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잘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