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우리가 인간적 사회를 희구한다. 그런데 그것이 왜 멀기만 한 것일까? 인간의 사회화 없이 사회는 인간화 되지 않는다. 이걸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 ‘소셜 컴머스’ ‘소셜 미디어’ 등등. 소셜(social)이란 개념이 유행처럼 되어 있다. 이것들이 ‘사회성’을 담지하는 내용성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사회성의 자각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떻든 ‘소셜’이란 게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 새로운 문명사의 중심적 개념으로, 핵심적 가치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소셜’은 한때의 유행어로 사라질 개념은 아니라 미래적 삶의 화두라고 볼 수 있다, 사회성이란 게 미래적 생존에서 생사를 가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 가령 근대체제의 중력장이 해체된 무중력 상태를 상상해보자.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통제불능에 의한 것이든 자연사적 충격파로 인한 것이든, 무중력상태에 들어갔을 때, 인간이 어떤 행동양식을 보일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이기적 구명도생의 방식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갈 때는 상호약탈, 살육의 처참한 전쟁터, 만인에 대한 만의 투쟁의 전장으로 변한다. 그야말로 ‘눈 먼자의 도시’가 된다. 다른 하나는, 소통과 협동의 협력체계가 가동되면서 공존의 생존체계라는 게 성립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회성이란 게 미래적 생존체계를 구축하는 관건이다, 요컨대 사회성의 여부에 따라서 인간의 대처방식이 달라지고 그것에 생사가 갈린다는 이야기다.

(b) '사회성‘을 말하기 전에, 또 ’사회화‘를 말하기 전에 ‘사회’라는 개념을 보자. 우리에게 사회라는 개념이 있는가? 그걸 먼저 따져보자.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사회적 인식을 말하고 사회적 정의를 말하고 사회적 가치를 말하지만 사실은 사회 없는 정의, 사회 없는 가치, 사회 없는 인식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사회에 대한 개념정의가 극히 모호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사회’라는 무엇일까? 사회라는 개념을 어떻게 갖고 있는 것일까?

그냥 인간들이 어우러지고 다중이 집합되어 있는 공동체나 집단과 조직을 사회라고 하고 그게 사회인 것처럼 자명한 것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쪽수만 많이 모여서 옹기종기 모여서 살면 사회인가? 그렇다면. 군집성과 사회성의 차이점은 뭐냐? 여기에 답을 할 수가 없다. 그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없었다.

오늘날 사회과학이란 것은 사회현상학이지 사회본질에 고민 - 사회가 무언지를 고민한 학문은 아니다. 인간들이 모여 살면서 표출되는 현상학적 이해관계, 그리고 그런 이해관관계의 조절장치를 이름하여 사회정의라고 했지만, 사회의 본질적 개념을 고민하지 않았다,

(ex) ‘지식 사회’ ‘시장사회’니 ‘민주사회’ ‘복지사회’니 그런다. 사회는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갖다 붙이는 것이다. 철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옷만 바꿔 입는, 그야말로 무늬만 바뀌는 것일 뿐 실은 바뀔 사회가 없다. 사회는 없고 사회의 환영만 있었다.

(c) 사회구성이란 차원에서 보자. 예컨대 개별자가 모여 살면 사회가 된다. 개인의 집합이 사회가 된다. 이렇게 넘어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사회성이 없는 자아, 이기적 자아를 모아놓아도 사회가 된다는 것인데 그게 사회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사회적 자아, 사회성이 있는 자아가 모였을 때 사회라는 범주가 성립하는 것이지 소아적 자유주의자, 탐욕적 자아가 모여서 사회가 나온다는 것은 그게 개념오류다, 탐욕의 자아가 모이면 그냥 동물의 군집과 같은 군집일 뿐이지 사회가 될 수 없다. 이기적 자아들이 아무리 모여도 거기에는 ‘사회’라는 교집합이 성립할 수 없다. 사회성의 교집합을 바탕으로 사회라는 것이 성립하는 것이지 사회성의 교집합이 없는데서 어떻게 사회라는 개념이 도출될 수 있는가?

[참고] 인간(人間), 왜 인(人)이 아니고 간(間)이 붙었을까? 세간(世間)에 사는 인(人)이기 때문에, 세상(=사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골짜기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의 세상 - 자아적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 한다. 자아적 사회라는 것은, 지배와 약탈, 이기적 욕망을 경영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세간(世間)을 벗어나 세상으로 진입할 때, 출세간이라 한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인간’에 대한 논의는 오래되었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지만 거두절미하고 사회를 담아낼 수 있는 개별자가 없다는 거, 사회적 자아가 없다는 것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사회성이 없는 구성원들로 사회는 구성되지 않는다, 그냥 인간이 모여 사는 무리, 집단을 사회라고 전제하고 그 안에서 윤리와 법칙을 따지고 정책을 개발하고 또 그것을 놓고 왈가왈부 한다고 해도 사회는 성립하지 않는다. 사회성이 없는 존재가 사회를 구성한다는 것 자체가 개념오류다. 이점을 우리가 다시 정리하고 고민해야 한다. 사회성이 있는 존재, 사회적 자아의 문제에서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d) 사회가 없다. 사회가 없는데 사회적 합의가 어떻게 도출될 수 있을까? 사회적 합의는 도출되지 않는다. 쪽수의 싸움만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기만과 술책이 지배한다, 그게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이다. 이런 기만상이 정리 되지 않으면 인류사회에 있어서 사회라는 개념도 없고 합의라는 개념은 없다. 영원한 투쟁만 있을 뿐이다. 저마다의 아상(我相)만 있는데, 사회가 아니라 자아적 사회만 있는데, 그건 필연적으로 갈등 투쟁이라는 여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거기에 합의는 없다. 아상을 먹고 사는 현실의 인간은 절대,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투쟁을 즐기고 평화를 오히려 두려워한다. 사회와는 양립할 수 없는 종자다.

우리가 이름 하는 사회, 지역사회든, 국가든 이름 하는 사회가 있다. 그러나 그 사회라는 것은 나와의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은, 논리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내 의지가 개입 되지 않은 사회다. 막연한 이미지로서의 사회만 있다. 국가정책이니 사회정책이니 제도개혁이니 그런 거대담론도 하고 사회적 이슈도 설정한다, 그러나 실은 무관심하다, 책임성도 없다, 단지 나한테 어떤 불똥이 튀냐? 뭐가 이득이 있나, 손해가 되나? 내 사는데 지장이 있나? 그런 당근, 채찍의 계산만 있다.

우리는 사회를 사회로 바라 보는 게 아니라 나라는 이기적이고 자폐적 자아라는 상, 아상(我相)의 틀 속에서 사회를 본다, 그리니까 사회는 없다, 사회는 아상(我相)과 자기욕망의 투영일 뿐이지. 사회는 없다. 우리들의 사회라는 개념은, 자기 주관적 욕망과 의식의 투영체일 뿐이다. 그게 우리들의 사회다.

(e) 그러니까 자아적 사회의 아상을 깨트릴 수 있는 존재적 자각으로 전환하지 않는 곳에서는 평화는 없다, 존재적 자각 없이 사회라는 개념은 없다.

존재는 자기 세계를 먹고 사는 게 아니다. 자기 세계를 먹고사는 것은 자폐증이다. 그것은 죽음의 시나리오다. 식물을 봐도 그렇다, 자기세계를 먹고 사는 것은 극히 한시적이다, 떡잎을 피우는 순간까지 만이다, 그때까지는 배아에 있는 영양분을 먹고 산다, 그러나 잎이 나오면, 물도 받고 빛도 받고 공기도 받고 비도 맞고 이렇게 해서 큰다, 그러니까 자기 것으로 살 수 없다, 자기세계를 먹고 살 수 없다. 존재가 세계에 머리를 내밀 때, 그 다음부터는 ‘나’로서 사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자아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게 삶의 의미다. 그러나 근대문명사는 자아적 사회관에 갇혀 있었다. 이걸 깨트리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끝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 존재적 자각은 엄청난 책임성, 헌신성을 동반한다. 종교적 개념으로 하면 순교의 가치에 해당하는 것이 사회다. 자기 온 몸, 온 마음을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다 녹여낼 때 싹틀 수 있는 것이 사회라는 것이다. 사회라는 것은, 사회라고 이름할 만한 존재적 근거와 가치를 내재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 근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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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님>만 님이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조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군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