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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할 때도 양념의 순서를 바꿔버리면- 시간을 어기면 - 맛이 틀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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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放下)’는 선택적 필요가 아니라 필수다
작성자 bangha
작성일 2016-05-29 (일) 16:48
   
‘방하(放下)’는 선택적 필요가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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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하(放下)의 의미가 무얼까? 방하(放下)는 문자적 해석으로는 내려놓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곧잘 마음을 내려놓는다하심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내려놓을 마음도 없고 올려놓을 마음도 없다. ‘방하착(放下着)’이란 불교적 용어가 있다. 그 의미는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또한 방하의 일면적 해석일 뿐이고 소극적인 이해다.

방하버린다’ ‘포기한다는 소극적 개념이 아니다. ‘방하는 나의 참 모습을 찾기 위해서 껍데기 내 모습, 거짓과 가식의 모습을 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참 모습이 드러나고 실현되어지는 것, 진실로 나에게서 실현되어지고 모두에게서 실현되어져야할 그 한 모습이 실현되어지는 것이 방하다. 참모습이 실현되고 드러내어지는 것이 방하다,

그러니까 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그것이 방하의 의미다. 순리에 자기를 내려놓는다는 그런 의미가 될 것이다. 나에 국집하고 나만이 이로운 것, 그러나 타()에는 이롭지 않고 타()에 소통할 수 없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나를 이롭게 하고 타를 이롭게 하는 것, 양자를 다 이롭게 하는 것, 이것을 진실로 이롭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도 하는 바이지만, 자리이타의 순리는, 나로부터 자유로운 데서 실현된다. 그래서 방하는 진실로 이익됨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 이점도 밝혀두자. 속제와 진제, 차안과 피안의 이분법, 이걸 동시에 뛰어넘는 게 방하다. 한국불교는 속제에서 진제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뛰어넘는 걸 이야기한다. 차안을 버리고 피안으로 뛰어넘는 걸 이야기한다.

그러나 방하는 끌어안고 뛰어넘는 거다. 속제와 진제를 하나로 연결하는, 차안과 피안을 연결하는 것이다. 속제도 방하해야하고 진제도 방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자적 개념으로는 초월(超越)이 아니라 포월(抱越)이다. 끌어안고 뛰어넘는다는 의미에서 포월이라고 한다. 이게 방하의 실천방법론이다.

 

2.

사회적 존재자로서의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 방하의 컨셉이었다, 그래서 1991년에서 94년까지 <존재론 강좌>를 진행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후일 사회적 자아의 첫 출발은 무언가? 생물학적 자아, 이기적 자아, 탐욕스러운 자아의 탐욕과 무명을 내려놓는다, 소위 방하착(放下着) 하는 것이다.

깨침이란 무엇인가? 도를 깨치는 게 아니다. 이 몸이 내 것이 아니다, 이미 사회역사적인 몸이다는 자각, 이것이 깨침이고 존재적 각성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각성, 거듭 태어나는 사회적 자아를 말하고자 존재론 강좌를 진행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운동은, 존재적 각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도- 대중론의 엘리트의식에 사로잡혀있었고 헤게모니전으로 치달았다.

존재적 각성 없이, ‘사회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을까? 운동이란 게 성립할 수 있을까? 오염되고 왜곡되어진 무명상, ()를 내려놓지 않는데 거기에 소통이 있을 수 있고 공감이 있을 수 있을까? 평등이란 개념이 자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사회를 말하고 운동을 말하지만 거기에는 헤게모니를 향한 게임의 법칙만이 있을 뿐이다. ‘세상 만들기는 없고 부수기와 조삼모사식의 아니면 시소와 같은 바꾸기만 있을 뿐이다

 

3.

방하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방하를 추상적이고 관조적인 것으로 새기는 경향이 있다. 이게 큰 문제다. 방하는 구체적인 행동철학이다.

방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존재가 존재다워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고, 존재가 숨쉬는 세계다운 모습으로 세계를 가꿀 것을 요구하고 있고 또 존재와 세계간의 끊임 없는 통교라고 할 수 있는 생활문화의 혁신을 요구한다.

그래서 방하의 구체적 실천으로 들어갔을 때, 그 지표로서 인간혁명, 생활혁신, 대승사회를 말하고 있다. 자타불이의 인간 혁명, 우리는 하나라는 이념에 맞는 인간혁명, 인간혁명에 기초한 생활혁신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건립되는 대승사회를 말할 수 있다,

방하는 좁은 반경에서는 자기개발, 자아실현이다.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세상건설, 세상만들기이고 더 거창하게 가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단순 소박하게 말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뜻에 나를 내려 놓고, 내가 하고자 하는 뜻을 내가 깔고 앉은 자리에서 현실화시키자. 모든 관념과 허구를 떨치고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인간으로 거듭나자, 꿈깨자!, 이게 방하다.

그러면 방하를 왜 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방하를 할 것인가? 언제 어느때나 온당하게 머물고 길을 가기 위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소화하기 위해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 방하한다. 풍요와 행복, 건강을 누리기 위해서, 또 역사라는 개념, 사회라는 개념, 우주라는 개념으로 봤을 때, 보다 진보하고 보다 고차원적인 보다 상승된 모습을 보장받기 위해서, 인간 본연의 심리로 들어갔을 때는, 자아실현, 자기완성의 욕구를 성취하기 위해서 방하는 필요한 것이다. 선택적 필요가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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