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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철학의 새로운 지평](5) - 철학의 올바른 정형
작성자 bangha
작성일 2016-04-11 (월) 22:15
   
[사회철학의 새로운 지평](5) - 철학의 올바른 정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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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제기한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그 윤곽과 해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세계의 실상은 무엇인가? 세계는 일차적으로 자연적인 물질적 존재인가, 우주정신 또는 세계 이성적인 의식적 존재인가? 객관적인 진리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진실로 실재하는 세계의 법칙은 무엇인가? 등등 어려운 문제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중핵을 이루는 문제인 세계의 물질성과 그 합법칙성의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세계는 물질도 의식도 아니다. 세계는 세계 그 자체이다. 이는 무형이며, 아무러한 실체도 가지지 않으며, 단지 그 스스로의 일정한 을 가질 뿐이다. 세계의 은 하나의 전체로서 기능하며, 이는 모든 부분에서 균일적이지 않다. 이는 마치 물체와 그림자가 같이 맞닿아 있어서 궁극의 실사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단지 그 스스로가 그러할 뿐이다. 이는 마치 하나의 점이 선이 되고, 평면이 되며, 입체적인 공간으로 점점이 되어져가는 것과 같다. 여기에는 어떠한 한 물질도 정신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세계가 아닌 우주 그 자체만이 존재할 분인 것이다. 이는 한 번 흩어지고 한 번 모여들며, 이의 운행은 쉼이 없이 계속되며, 한 번 흩어지면 오로지 의식과 물질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만, 한 번 모이게 되면 의식과 물질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는 아무 것도 아닌 그 무엇으로만 남는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우주는 창조의 모습도 진화의 모습도 아니다. 그러나 이 둘의 모습에서 완전히 새로운 전혀 엉뚱한 그 어떠한 것도 아니다. 창조는 진화의 극단이며, 진화는 창조의 새로운 모습이다. 이 둘은 선후나 분리의 개념이 아니다. 언제나 항상하는 의 모습인 조화일 뿐이다. ‘은 곧 물질이요 의식인 것이다. ‘이 없는 물질이나 의식은 생각할 수도 존재하지도 않는다. 의식이 없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물질이 없이 의식만이 홀로 있지도 않다. 세계의 은 존재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단지 모든 것의 뿌리가 될 뿐이며,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이러한 은 전체적으로 획일적으로 시차를 두고서 점진적으로 발현하거나 기능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분히 동시적이며 주체적이며 일시적인 다양성을 발휘한다, ‘은 전체적으로 획일적으로 시차를 두고서 점진적으로 발현하거나 기능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분히 동시적이며 주체적이며 일시적인 다양성을 발휘한다. ‘은 그 스스로의 의지나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이 세계의 의식과 물질이 의지하는 소이가 될 뿐이다. 이것은 때로는 무형의 의식과 물질에서 유형의 의식과 물질로 나아가기도 한다. 모든 의식과 물질은 무형에서 유형으로 발전하고자 하며, 유형의 모든 의식과 물질은 다시 무형에로 나아가거나, 그 스스로의 에 의하여 궁극에는 무형의 의식이나 물질이 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아무 것도 아닌 에 의하여 궁극에는 무형의 의식이나 물질이 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아무것도 아닌 이 일정한 자기 한계를 가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의식과 물질은 궁극에는 자기 흔적이나 잔영을 전혀 남기지 않는 제한적인 실체일 뿐이다. 그들이 세계와 우주 소유할 수 있음은 그들에게 오직 이 하나의 이 있기 때문이다. 이 하나로 언제나 항상하며, 하나일 수 있으며, 또 모두일 수 있는 것이다. 무형의 의식과 물질이 유형의 그것으로 되는 것이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며, 그러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의 법칙성과 진리성은 이러한 에 연원하는 유전 변화의 원리를 파악하는 것에 의하여서만이 그의 생명력과 타당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만유의 모든 실상들은 그의 의식과 물질이 일치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안정점이자 균형점인 을 향하여 끊임없이 부침을 거듭하여 계속해나갈 뿐인 것이다. 세계는 근본적으로 을 향하여 끊임없이 부침을 거듭하여 계속해나갈 뿐인 것이다.

세계는 근본적으로 과 무형 및 유형의 사이를 왕래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진전되어가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구체적인 전개와 운행에 있어서는 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연출한다. 대체적으로 에서 무형이 되고, 무형은 유형으로 되며, 또한 유형은 그 스스로의 일정한 한계에 달하면 무형으로 되며, 무형은 다시 으로서의 회귀 과정을 거치는, ‘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五元的二分 運動을 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二分 運動의 자세한 과정은 유형과 무형, 무형적 유형과 유형적 무형의 性的 相沖의 모습 여하에 따라서 三元的 四分 運動의 과정의 구체를 거치는 것이기에, 이러한 性的 相沖에로 합치되기란 어려운 일이며, 하나의 事象이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의 발전적 진입과 전개를 시도하기란 실로 難克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있어서의 이러한 性的안정과 균형 및 이를 매개로한 발전적 지입이란 어쩌면은 사물의 동일성의 상실이나 심지어는 죽음의 의미로까지 인식되어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의 事物現狀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일치성 자체가 까다로운 일이며, 자연적으로 존재와 의식은 유무형의 일정한 전이 과정과 시간적인 간극을 사이에 두고서, ‘을 향한 지속적인 三元五元性的 相沖의 길을 밟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운행의 근원적인 힘은 외적 요인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내적인 性的 相沖의 원인력에 기인한 것도 아니다. 단지 세계와 우주 자연의 스스로가 그러할 뿐이다.

나는 철학의 정형으로서 전제 사실의 구명에 있어서의 진지성과 궁극성을 제 4장에서 먼저 이야기 한 바이며, 여기에서 하나의 결론을 미리 언급하자면 이와 같다.

기본적으로 세계 및 그의 합법칙성은 인식 가능한 것이며, 절대적 객관적 진리는 엄존하는 것이며, 이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생존의 문제로서 밟아가는 과정이며, 이러한 진리의 과정은 유무형의 성을 동시적으로 향유하는 주체에서 있어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무제한적인 전유물로서 그 실재성과 실용성을 보다 발전적인 性的가치창출에로 변환할 수 있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물 그 자체와 현상, 나아가서 존재와 의식은 일치하지 않으며, 앞서서의 의 상태를 떠나서는 그 운행의 발전 단계 구조상 무형의 의식과 물질은 유형의 물질과 존재에 선차적으로 자리한다. 그것이 존재와 의식의 관계에 있어서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근원적으로 본질적으로 의식이 존재에 선차적 동시성과 후차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며, 그의 범주의 반경과 세계의 소유적 분포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광범위성과 다량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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