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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철학의 문제 - 강의록(2)
작성자 bangha
작성일 2016-01-21 (목) 21:42
   
사회철학의 문제 - 강의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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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어쩌면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는 사회 철학의 장을 열어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철학적인 원리에 근거한 합법칙적인 사회에의 열망으로, 철학적인 사회 건설을 위한, 사회 철학 이념의 정립과 구현의 장으로서의 역사의 마당만을 소유해 보았을 뿐인 것이다.

 

이렇게 가혹하게 평을 한 데는 그런 게 있다. 자연 과학적인 소양으로서의 진화론적 인식, 사회 발전 모델에 있어서의 진화주의적 인식, 그리고 인간사회에 대한 기계주의적이고도 설계주의적 인식, 이런 거들은 현실의 인간의 모습이 성찰을 건너뛰면서 막연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 지나친 신뢰에 기초한다. 비유하자면 너무나 이상적인 집을 그리고 있지만 그러한 집을 건설할 수 있는 현실의 자재라든지 공급의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는 거다. 재원 조달이 안되는 좋은 집을 지으려 하다 보니까 파탄 지경에 가버렸다는, 그런데 대한 지적이다.

 

(10) 철학은 인간 사회와 필연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실재성과 유용성의 문제는 인간의 생존에 대한 욕구와 생활양식 및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인간 사회의 구성 원리 및 사회 구조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문제를 떠나서 인간과 사회의 현상에 따라서 제약되어지는 다분히 사회학적인 분과이다.

 

사회 철학이라 그랬을 때는 사회학적이다. 그런데 철학만을 덜렁 떼어놓으면 사회적이지 않다. 이 우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이라는 제한적인 의미를 떠나서 그대로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사회학이라는 분과와는 또 다른데, 인간과 연결을 시키자면 사회학적인 분과가 된다.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기존 우리가 알아왔던 인간 구조 측면에서의 물질과 의식, 물질과 정신, 이렇게 나누어지듯이, 사회도 각 개별 주체들의 욕구, 전체 시장의 욕구와 그 다음 그 욕구를 얼마만큼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의 제반 여건, 이양면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어느 쪽에 의해서도 사회 철학이 제약되어질 수 있는 분과이다. 그러니까 현실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너무 이상적인 이성 지상주의에 사로잡힐 때에 현실성이 상당히 무시될 수 있다는 거다.


(11) 본질적으로 사회와 철학과의 만남은 불완전과 완전과의 만남이다.

 

사회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 자체가, 원래 있어야할 사회가 불완전하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현실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오늘 이 시점에서의 사회는 불완전하다. 사회는 완전해야 하는데 우리들 저마다가 완전하지 않는 행동을 가랑비 옷 젖듯이 죽 쌓아갔기 때문에 사회 자체가 불완전하다.

 

(12) 만약에 철학적 원칙만을 고집한다면 인간 사회는 단순한 자연물의 덩어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며,

그렇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자연물의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이 불완전한 것을 어떻게 완전하게 돌릴 것인가가 오늘의 우리의 과제이다. 인간이 장난질을 해서 비뚤어지게 만들어 놓았으니까 너희들 스스로 책임을 지고 고쳐 놔라. 그것이 바로 세계의 명령이자 역사 자체의 명령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 부모는 안 그랬는가? 우리 할아버지는 안 그랬는가? 어디엔가는 걸릴 것이다. 누군가 그렇게 했다, 그것은 곧바로 나의 책임이다. 내가 안 했다고 해서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쉽게 발뺌하지 마라. 궁극적으로 내가 저질러 놓은 것이다. 나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러한 철학적인 시각과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13) 또한 사회적인 현상에만 급급하다면 인간 사회는 그 스스로의 바탕인 그 무엇을 잃어버리게 되는 한심한 모양이 되고 말 것이다.

현상 자체에만 고집하면 그렇다. 우리 각자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과연 내가 하루를 살 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얼마만큼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가? 의문이다.

내가 지금 현재 딛고 있는 현상만 고집할 때에는, 개인의 인간 문제를 봤을 때도 인간답다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질 수 있고 중심이 없다. 또 사회를 봤을 때도 마찬가지. 사회적인 현상에만 급급해서는 사회가 가야할 그 무엇, 있어야 할 그 무엇을 잃어버리게 된다.

 

(14) 철학적인 원칙만을 고수할 수도 없으며, 자연적 생물학적인 흐름에만 내어 맡겨져서도 안 되는 것이 인간이라는 준엄한 존재의 실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 사회는 그 스스로의 모습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서, 나름대로의 철학을 모색하고 추구해왔던 것이며,

 

인간 역사가 소유의 역사라고 볼 수 있는데, 소유에 먼저 발을 내디딘 자들이 그들의 요구를 더욱더 충족시킬 수 있는 제도가 어떠한 것인가를 정립하는가에 따라서 굴러왔다. 한참이 지난 뒤에 그래도 철학적인 인간으로서의 영역이 많이 확보된 시점에 가서는 그것이 갈등 구조로 비춰졌다.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나름대로 철학을 모색하고그랬을 때 이것이 철학이 아니다, 쉽게 기술의 편의상 철학을 모색하고 추구해왔던 것이며,이렇게 기술해 놓았을 뿐이다. 사회의 모습도 그들 나름대로의 사회의 모습이지 사회가 아니다, 소위 말해서 중세시대면 봉건 지주들의 사회이고, 고대 국가라면 국왕의 사회, 국왕이 추구하는 사회였지. 사회라는 개념은 없다.

 

(15)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 사회는 그 스스로의 모습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서 나름대로의 철학을 모색하고 추구해왔던 것이며, 양자간의 합일을 도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끊임없다. 그 사회를 받쳐주는 철학이 있다, 우리 역사도 그렇다. 조선 사회의 철학은 성리학적인 기반이고, 고려 사회의 철학은 불교 철학적인 기반이고.... 그렇게 배웠다. 어떤 사회이든 간에 그 이전에 원시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봤을 때 철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천박한 정도라도 철학은 다 있다. 사람의 생활에는 철학이 없을 수 없다. 개인의 생활로 가더라도 나의 좌우명, 하다못해 가정을 보더라도 가훈, 가풍이 있다. 철학이 분명히 있다.

 

(16) 이것이 사회와 철학과의 상층이자 접목의 발단이며, 사회 철학이라는 미증유의 난제가 대두하게 되는 발단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의 숙제다. 예를 들어서 오늘 이 시대의 우리가 추구하는 철학적인 가치에 완전히 합당하는 정말 이상적인 사회가 구현되어졌다손 치더라도 인간 자체가 철학적이지 않을 때 언제 어느 때에나 사회의 모습은 일그러질 수 있다. 그러면 그 사회는 그 사회에 맞는 사회 철학을 언제나 요구하고 길을 가야 한다. 한 번 되어졌다고 길을 쉴 수는 없다. 그러한 평안과 방일은 어느 사회에서든 어느 시대에서든 우리 앞에 펼쳐지지 않는다. 그런 희망은 버려야 된다. 그때그때 시대의 그때그때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개인들의역사의식, 철학적인 정신이 없으면 그 사회는 썩는다.

(17) 인간 사회의 발전 단계를 따른 사회 철학의 형태를 역사적 유형별로 살펴 굳이 거론하자면 상고의 군장제 사회의 가족적 사회 철학, 고대 국가 형태의 노예제적 사회 철학, 중세의 봉건제적 가신적 사회 철학, 근세 절대국가의 산업적 경제적 사회 철학,

현재 인류가 아마 이러한 철학까지 도달해 있다. 경제적인 기준에서 설정한 사회 철학이다, 그 이전에는 그 기준이 인간에 초점이 맞추어지다가 그 다음에는 인간이 갖고 있는 소유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데까지만 지금 정해져 있다.

그러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되는가? 구체적으로 소유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수 있게끔 해야 하고, 또 인간 자체에 있어서 물질적인 부분 이외에 의식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사회적이게끔 바꾸어야 한다. 이 숙제가 남아 있다. 앞으로 풀어야 할 인간 사회에 있어서 궁극적인 사회 철학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여지가 남지 않는 물질과 의식 모든 부분이 사회화 되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인간의 사회화, 사회의 인간화 그런 타이틀이다.

 

(18) 경제적 사회철학 등을 사회 철학의 유형으로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부의 창출과 확대라는 측면을 넘어서서의 소위 현대 복지 사회의 사회 철학을 무어라 개념 규정할 것인가는 한 마디로 적확하게 단언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를 다원적 우주적 존재 철학(Pluralistic Cosmobeings Philosophy)으로서의 성격을 띄는 사회 철학, 존재적 사회철학(Social Philosophy for Cosmobeings)’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현대 복지 사회그랬을 때 과연 복지 사회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되고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을 그러한 사회 철학에 대해서 무어라 개념 규정할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한 마디로 개념 규정하기가 어렵다.

어차피 모든 존재는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띄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원적인 성향을 띄는 우주적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원주의적 이론 경향을 띄는 이론 철학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저마다가 우주적 존재,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하나의 기준에 입각해서, 증명 사실을 남기지 않고 어떤 경우에든 변하지 않을 어디에나 적용 가능한 - 존재론 체계에서도, 인식론 체계에서도 가치론 체계에서도 완전한 그러한 것으로서의 - 사회 철학을 정립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그게 우주적 존재를 위한 사회 철학이라는 영문 표기를 해 놓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표기를 해 놓았을 뿐이고 그게 정확한 의미로 전달될 지 안 될 지는 의문이다.

 

< > : ‘다원적 우주 철학이라고 했는데 다원적이라는 말을 꼭 붙여 써야 되는지?

< > : 방금 말씀 드린 대로다. 저마다의 모습은 다 다른데, 저마다의 모습이 있더라도 모든 존재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현상적으로 봤을 때는 달라 보인다, 착한 놈 있고 나쁜 놈 있고, 예쁜 사람 있고 추한 사람 있고, 그것이 어떻게 본질적으로 같은가 이렇게 되니까, 그러니까 현상적으로 봤을 때는 천차만별이지만 이게 전부 다 우주적 존재라는 개념을 갖고 또 그러하다는 것을 전제로 철학을 다듬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다원적 우주적 존재론이라는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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