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행동에 부주의하지 말며,말에 혼동되지 말며,생각에 방황하지 말라.
 Home  > 건강은 체계다  > 본문
동무의 학문과 문제의식
작성자 방장
작성일 2008-10-21 (화) 15:35
   
동무의 학문과 문제의식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google+로 보내기

동무의 학문과 문제의식



1) 동무의 시대

동무의 시대는 격변의 시대였다,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은 위기와 혼돈의 시대 였다. 안으로는 봉건적 학정과 조선정부의 부패와 무능, 밖으로는 서양열강의 침탈, 그 와중에 척사파, 개화파, 동학과 농민전쟁으로 소용돌이치고, 어떤 지도이념도 대안 세력도 없이 조선의 운명은 표류하고 있었다. 식민지화의 길을 가고 있었다. 동무가 이 격변의 시기에 <격치고>의 집필에 13년 세월에 매달렸다. 이 격변의 시기에 그는 왜 <격치고>에 매달렸던 것일까?

2) 동무의 문제의식

위기와 혼돈의 시대 속에서 그의 삶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세상을 살 것인가? 세상을 마주하는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여기에도 두 가지 방식의 물음이 있다. 통상적으로 자신의 욕망의 연장선상에서 세상을 마주하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세상에서 어떻게 재물을 구하고 어떻게 명예를 누리고 권력을 차지할 것인가라는 그런 차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이 있다. 이 경우는 사실 ‘삶’의 문제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주관적 욕망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단순 생존이나 사회생활의 반경에 머무는 것이고 객관세계와 마주하는 삶의 반경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세상 속에서 어떻게 生을 연소시키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 - 즉 합법칙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묻는 물음이 있다. 이 물음에 이르면,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가? 나의 근본이 무엇인가? 내 생명이 굴러가는 근본 바탕이 무엇인가?를 붇지 않을 수 없다. 근본을 알야야 어떻게 살 것인지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에 합당한 삶 - 그것이 합법칙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근본을 모르고 ‘잘 살아보겠다’ 고 하면, 그 자체가 유희일 뿐이기 때문이다. 동무가 <격치고>에 매달린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의 근본에 대한, 존재와 세계의 근본에 대한 물음, 그것이 ‘격물’의 문제의식이다,  그러니까 ‘격물’은 한가한 철학공부가 아니다, 삶에 대한 정직한 물음이 있다면 반드시 ‘격물’에 직면한다. 이를 피해갈 수 없다. 뒤집어 말하면 삶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데서는 ‘격물치지’의 공부로 들어설 수 없다. 그러니까 삶에 대한 고민의 깊이와 그 문제의식의 치열함만큼 격치로 나아갈 수 있다. 동무가 13년 세월 무섭게 공부했던 것도 그만큼 삶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그의 학문을 ‘천제성’에서 나온 것으로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지도는 격물에서 시작하여 치국 평천하로 나아간다. 진정한 공부는 격물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격물이전의 공부는 소학(小學)이고 공부의 주변을 맴도는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달리 말하면 ‘격물’이 주관의 객관화로 들어가는 기점이며 치국평천하에 이르는 과정, 그것은 이른바 ‘존재와 세계의 합치’ ‘존재의 세계화’라는 인간발달의 단계임을 말한다.


그러니까 격물 이전은 존재성을 획득하지 못한, 세계 속의 존재로서 진정한 의미의 ‘주체’가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또 달리 말하면 소모적인 생명을 소모하는 인생일 뿐, 생명을 생명답게 가꾸는 생산적인 인생경영을 말할 수 없다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달리 말하면 생명의 법칙과 괴리되는 命을 굴려가는 - 괴리되는 만큼이 이른바 인생의 업장이고 인생이 병드는 것이다 - 단순 생존 이상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격물’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아직 ‘삶’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3) 동무 학문, '격치고'에서  ‘수세보원(壽世保元)’으로


동무의 양대 저술은 역시 <격치고>와 <동의수세보원>이다. <격치고>는 1880년에 집필을 시작해서 1893년에 마쳤다.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은 1894년 한 해애 집필을 마쳤다. 그리고 그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 <보원국(保元局)>이란 약방을 연다.

여기서 ‘보원(保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학문적 총결산이기도 하고 그가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을 ‘보원(保元)’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세보원(壽世保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에도 잠깐 말한 바 있지만 壽는 삶이란 의미이고 世는 세상(=세계)이란 의미 달리 삶의 현장이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법칙, 그것이 ‘수세보원’의 의미다, 그리고 ‘수세보원’이란 결론에 이르게 한 공부가 <격치고>였다.

* 壽와 世는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壽는 존제 개체, 世는 세계로 보고 존재 개체와 세계가 접점을 이루는 궤적 그것을 삶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보원(保元)이 란 개념은, 인간의 근본적 심성을 여하히 회복하고 개발해서 인간의 근본 본성이 살아 움직이는 세상을 꾸려낼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한 것이다, 그래서 동무의 근본사상을 보원사상(保元思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단순한 의학자가 아니라 경세가(經世家) 였다. <동의수세보원>은 경세의 방편이었다, 

 
 

Copyrightⓒ(주)방하 All right reserved.

주소 : 서울 양천구 오목로 182 미덕빌딩 201호  1566-4995 / 대구 수성구 범어동 250-4번지 053-741-0576

W3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