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14) 사단(四端)이 사상(四象)의 본원이다

(6-14)

權變之心是非之端也(권변지심이 시비의 단이다)

器率之心恭敬之端也(기솔지심이 공경의 단이다)

行檢之心羞惡之端也(행검지심이 수오의 단이다)

作處之心惻隱之端也(작처지심이 측은의 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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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트 >

이 내용은 앞서의 내용을 총괄한 것이다. 즉 권변, 기솔, 행검, 작처를 사단(四端)으로 풀이하고 있다. (3)(10)(13)의 자료들을 같이 볼 필요가 있다.

a) 權變之心是非之端也(권변지심이 시비의 단이다)

앞서 권변(權變)에 대해서 몇 차례 설명을 한 바 있지만 권변(權變)은, 천세(天勢) - 천하판세를 도모하는 것이며 천기의 변화에 따라 능변(能變), 능통(能通)할 수 있는 것이다. 천기를 알고 천세의 변화에 능변 능통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앎(智)이다. 그러니까 권변지심이 智이고 사단으로 말하면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비(是非)라는 개념도 우리들의 통상적 감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일상의 시비라는 것, 그 기준이란 것은 자의적이다, 그때 그때 다르다. 때로는 조직적 이해의 차원, 윤리적 차원, 법적 차원, 사회적 차원 또는 국가적 이해관계의 차원에서 시비를 가린다. 그러나 사단론에서 말하는 시비(是非)의 차원은 천하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개념이다. 오늘에 옳지만 내일은 틀려지는, 이 곳에서는 옳지만 다른 곳에서는 옳지 않은 그런 시비가 아니다. 그래서 정말 시비를 가릴 줄 안다면, 자연과 인간, 사회와 역사가 총체적으로 시야에 들어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b) 器率之心恭敬之端也(기솔지심이 공경의 단이다)

기솔(器率)이란 것은, 한마디로 사회적 조정능력이다. 기솔이란 직역하면 ‘그릇을 통솔한다’는 의미인데 인품도 다르고 재질과 재주도 각자 다른 많은 사람들을 사회적 발전을 위해서 합리적인 관계를 창출하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 관계적 합리성을 도출하는 것, 이것을 禮이며 사단의 공경지심이라는 것이다.

왜 기솔을 공경지심으로 보는 것일까?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버리지 않고 그 그릇(=사람)이 의미를 지니고 쓸모있게 해서 사회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에 대한 공경지심이 없다면, 그때 그때의 편의에 따라서, 주관적 이해관계, 조직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사람을 함부로 하고 마구버릴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기솔지심과는 거리가 멀다. 그릇을 통솔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일 터이다.

c) 行檢之心羞惡之端也(행검지심이 수오의 단이다)

행검이란 것은 절제있는 행동, 근신(謹身)하는 것이다. 그것은 외부의 강제나 외부의 평가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의 법도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해야할 행동은 하고 하지 말아야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신체의 법도이기 때문이다. 신체라는 것은 마구할 수 없는 법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륜이 생기는 것이며 인륜을 따르는 것이, 행검(行檢)이며 행검이 바로 義이다.

義라는 것은 마땅히 해야할 바를 하고 하지 말아야할 惡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惡을 행하는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 하는 것이 義이다. 그래서 행검을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발현으로 본다.

d) 作處之心惻隱之端也(작처지심이 측은의 단이다)

작처지심이란 것은, 삶의 터전을 일구고 생활세계를 가꾸어가는 마음이다. 생활을 사랑하고 가꾸는 마음이다. 생활을 사랑하면 보생(保生)과 활인(活人)의 의미를 체득하게 된다. 천지자연이 생을 지켜주고 있으며, 또 수많은 사람들의 공이 있어 그 덕분에 내가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된다. 그것을 알면. 나 또한 보생과 활인의 삶을 살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작처지심을 仁이라고 말하고 측은지심의 발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측은지심은, 단순히 불쌍하게 여긴다, 동정한다는 것과는 의미가 다른 것 같다. 일방적이고 시혜적 개념은 아니다. 仁도 그렇다. 상급자가 하급자를 포용하고 베푸는 그런 개념은 아니다. 측은지심도 仁도 상호적인 개념이다. 그러니까 측은지심이란 것, 누구가 ‘나’를 주장하지만 정작 ‘너’ 없이 ‘우리’ 없이 살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다. 무수한 것들의 공에 힘 입지 않고서는 살아 있을 수 없는 약한 존재다.서로가 서로에 의지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더불어’ ‘함깨’ ‘같이’ 살아야 한다. 생명의 질서, 삶의 질서가 본래 그렇다. 그러나 그러한 질서를 잊고 그 질서 속의 자기 본분을 잊고 사는 연약한 존재에 대한 자각과 연민이 측은지심이 아닐까?

* <참 고>

동무는 사상철학으로 일관하는 바이지만 그 본원은 사단이다. 사상의 본원이 사단이다. 사단을 떠나서 사상철학은 성립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왜인가?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 사람다움의 정체성을 사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단을 잃는다는 것, 사람다움을 잃어가는 것이고 사람이 병들고 죽어가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 - 신 - 심 - 사의 사상으로 관하든 오장육부를 관하든 사단론에 근거하고 있다. <동의수세보원>도 사단론의 확충인 셈이다.

사단론은 유가철학의 핵심이지만, 동무의 사단론은 성리학자들이 제기하는 사단론과는 다르다. 성리학자들의 사단론은 심성론 차원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사단론은 추상적 관념적 차원의 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단론에 근거한 육체와 정신의 상관관계를 말하지도 못했고 또 사회, 역사적 차원의 동력을 사단론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성리학의 사단론은 인간의 현실적 문제, 사회역사적 문제와 상관 없는 심성론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동무의 독창성이랄까 천재성이 있다.

한의학의 차원에서 보아도 동무의 사단론에 기초한 사상의학이 지니는 의의는 획기적인 것이다. 사실 한의학의 신기원이라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통적 한의학은 기혈의 흐름을 조율하는 기학 차원의 것이었다. 말하자면 현상적 질병을 다스리고 그에 필요한 기혈을 조율하는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사단 = 사람다움을 잃어가는 문제, 그것에 근본을 두고 있지 않았다. ‘마음을 잘 써야 한다’고 강조 하지만 추상적인 으로 마음을 말하는 정도였다. 정신과 육체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없었다.

이를테면, 그 사람이 사단을 잃어가고 사람다움을 잃어가면, 그 사람의 오장육부의 균형관계가 어떻게 깨어지는 지 그래서 그것을 바로 잡자면 어떤 처방을 써야 하는지를 말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전통적 한의학은, 질병을 보고 질병을 마주하는 질병론일 뿐이었고 동무의 한의학은 인간을 마주하고 인간론에 근거해서 인간을 다스리는 인간의학이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즉 성리학자들은 기학(氣學) 없는 이학(理學)의 관념론으로 흘러갔고, 그에 반해 한의학은 이학(理學)없는 기학(氣學)의 변용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동무의 사상철학, 사상의학은 이 양자를 통합한 새로운 체계의 학문이었다.

<인간의학>의 개념도 우리가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의학이란 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막연한 소리가 아니다. 현대의학도 그렇고 오늘날의 한의학도 그렇지만 인간의학이 아니다.

질병을 마주하고 질병을 다스리는 질병론일 뿐이다. 사람을 보지 못하고 질병에만 국집하는 질병론 이상이 아니다.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어떻게 질병을 유발하는지, 사람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사람 없는 질병을 말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성립할 수 있는가?

본말로 따지면 사람과 질병, 어느 것이 근본이고 어느 것이 지말인가?

과연 사람을 떠나서 질병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사람이란 것, 추상적인 물건이 아니다.

사람다움을 갖고 있기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언가? 사람다움의 정체성이 무언가?

그것이 사단이란 것이다. 사람을 보고 사람다움을 회복하자는 것, 사람을 다스려 질병을 고치는 것이 인간의학이다. 사람을 보지 못하는 질병론을 넘어서 인간의학으로 가는 것, 그것이 21세기 의학의 전환일 것이다. 그것의 의학이 가야하는 길이다.

우리가 <격치고>를 공부하는 것도, 그러한 한의학의 새로운 전환을 고민하고 준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문제의식을 다시 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사상의학이 사단론에 근거한 것임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문제는 질병치유의 인간 내재적 자생력, 그것이 사단에 근거하는 것임을 갈파하고 그에 따른 진단과 처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단이라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가치체게가 아니다. 인체의 질서체계를 움직이는 그 중추적 기제로 보는 것이다. 이점 우리가 깊이 생각할 문제다.

한의학을 원리의학이라고 한다. 그때 원리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정말 원리의학의 진면목이 무엇일까? 우리가 사상의학을 주목하고 사상의학의 기초를 이루는 <걱치고>를 공부해야 하는 것도 그 대답을 찾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